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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 – 마이클 호튼

    ‘세계관’하면 RPG 게임의 배경설정만 떠오를 때가 있었습니다(혹시 ‘창세기전’이나 ‘영웅전설’ 같은 불후의 명작을 아시는 분들이 계시는지..ㅎㅎ). 대학교에 와서 프란시스 쉐퍼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공대생의 무지함을 따끔하게 실감한 제가 처음 읽게 된 책이 영광이가 추천한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제임스 사이어)이었습니다.   세계관은 말하자면 일종의 안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데, 일종의 ‘가치관’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에 기초해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안경’입니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은 뭘까요? 개혁주의를 ” ‘오직 성경’을 기치로 스스로를 성경에 부합하도록 항상 개혁해나가는 주의”라고 정의내릴 때,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은 ‘가장 성경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경’입니다.    이 …

APJ::예수님만 있으면 되지 다른 성도들이 필요하나요?

  원문보기 이 시리즈 모두 보기 Q. 교회 안에서 (성도들에 대한) 책임을 갖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하시는 분이 오직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불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에 대해 어떻게 말해주실 수 있나요? A. 전 아마 하나님께서 많은 방식으로 말씀해주신 성경을 인용할겁니다. “서로 권면하라. 서로 충고해라. 서로 가르쳐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해라.” 이것들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기 위해 도와주는 하나님이 정하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짜로 신뢰하면 아무도 필요없다!”라는 말은 피상적인 논리가 담긴 말입니다. 사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 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눈이 손에게 ‘네가 필요해’라고 말하면, 그건 예수님이 필요하지 …

APJ::개혁주의/청교도 전통에도 관상기도가 있나요?

  원문보기 이 시리즈 모두 보기 Q. 개혁주의와 청교도 전통에서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나 그리스도인의 명상(Christian Meditation)에 관한 것들을 찾을 수 있나요? A. ‘환상 골짜기(The Valley of Vision) [사22장에 언급됩니다 – 역자주]’라는 작은 책에서 나오는 기도가 우리의 예배 가운데 자주 눈에 띄는지를 알면 놀라게 됩니다.   ‘환상 골짜기’는 청교도 기도문을 모아놓은 것인데, 저는 이것들을 그런 종류의 기도라고 분류합니다. 그것은 깊이있고(thoughtful), 사색적이고(reflective), 묵상적인(meditative) 기도입니다. 혹 여러분은 그것이 특정한 종류의 운율로 쓰여졌다는 것을 발견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매우 의도적인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마도 이 기도문들은 공적인 용도로 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서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은 성경적 실재라는 것이 저의 …

교회 – 영생을 누리는 곳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요일5:13   1. 영생 = 영원한 삶?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영생’을 얻음을 믿습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시, 죽음 이후의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을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진시황제가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찾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런 불로초를 얻게 되는 걸까요?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마25:46   성경은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간에 다 부활하여 영원토록 존재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은 단순한 ‘영원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전 사실 …

일본을 위한 기도 – 존 파이퍼

    원문보기 일본을 위한 기도 존 파이퍼   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 참사의 모습은 종말론적입니다. 밀려들어오는 물의 파괴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거대합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은 땅의 흔들림과 바다의 치솟음과 파도의 격렬함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십니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에 떨며 주의 헤아릴 수 없는 심판하심과 불가해한 방법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우리의 얼굴을 가리고 당신의 전능한 손에 입을 맞춥니다. 우리는 간구함 가운데 무력함을 깨닫고, 얼마나 우리 무릎 아래의 이 땅이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느낍니다.   오 주님이시여, 우리는 스스로 당신의 거룩한 위엄 앞에 겸손해지고 회개합니다. 눈을 깜박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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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억하라 – 존 파이퍼

  The Ministry of Reminding – myself 존 파이퍼 원문보기   희망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은 위대한 사역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이런 이유로 서신을 기록했습니다.(벧후 1:12; 롬 15:15) 기억하게 하시는 분은 주로 성령이십니다(요 14:26). 그러나 수동적이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기억하도록 하는 일의 책임은 여러분에게만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제일 먼저 기억해야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생각은 큰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애 3:21-22)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자신과 우리에 …

교리를 가르치는데 세속적인 미디어를 사용해도 괜찮은 건가요?

    원문보기 이 시리즈 모두보기 Q. 교리를 가르치는데 세속적인 미디어를 사용해도 괜찮은 건가요? A. 양육할 때 세속적인 것을 택해서 보편적인 은혜나 악에 대한 예시로 사용하거나 그것을 이용해서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대체적으로, 저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험한 점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전적인 거룩함,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사랑, 그분께 대한 전적인 충성심, 그리고 섬김과 희생과 사랑에 대한 전적인 헌신 등을 양육하는데 있어 최선의 길일까요? 아니면 이것은 단지 문화 속에서 젊은이들 입맛이나 돋구어주고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경향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 p style=”text-align: justify;”>  이런 문제들은 우리 젊은 리더들의 삶에 …

우리는 왜 QT를 하는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외국에 나갔고, 오랜 시간 후에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아이가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만큼 자랐을 무렵, 아이의 아버지는 편지를 써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편지 외의 소통 수단은 없었습니다. 아이는 편지를 읽기 위해 글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글 공부를 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고, 그렇게 대충 배운 상태로 편지를 맘대로 해석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편지에서 아버지가 쓰신 내용을 잘못 이해해서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돈을 아껴쓰면서 아버지에게 가끔씩 돈도 부쳤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초라한 차림의 아버지를 상상했었는데, 억만장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