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진짜배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背景(배경)

제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입니다. 대학을 마치고 학사장교로 복무를 하던 터라 퇴근 후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개인 공간도 있었으며 월급으로 그동안 염원하던 아이맥도 장만했더랬죠. 군대 오기 전부터 재국 전도사와는 친한 사이였습니다. 특히 함께 신앙적 고민을, 엄밀히 말하면 교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누던 사이였죠. 같은 공동체에 몸담고 있었는데 여간 고민거리가 아니었거든요. 이번에 정규강도사님의 글이 비교적 큰 파장을 일으킨 것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해 깊이 그리고 많이 고민하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진짜배기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나가면 자연스럽게 교회에 대한 고민들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각자가 교회를 무어라 정의하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교회에 몸담고 있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중오든 애정이든 또는 애증이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어머니’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잠깐 곁길로 빠졌는데요. 이렇게 함께 고민하는 길을 걷던 중 재국 전도사가 우연한 기회에 부흥과개혁사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저에게 소개해주었고, 그 책들을 통해 접한 개혁주의는 정말이지 우리에겐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고민하던 것들을 너무 시원하게 말해주었거든요. 당시 미국에서도 존 파이퍼 목사님을 위시하여 젊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우수수수수 쏟아져나왔고, 마침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던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와 팟캐스트를 통해서 무시무시한 확장력을 보여주던 때였습니다. 인터넷 덕택에 먼 한국 땅에서도 쉽게 그들의 컨퍼런스 메시지나 주일 설교, 대학 강의 등을 접할 수 있었죠. 그렇게 알게 된 미국의 젊은 개혁주의 기수들은 전통적 신학이 가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탄탄함과 소통할 줄 아는 세련됨을 동시에 지닌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들과 같은 시류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죠.

 

誕生(탄생)

부푼 가슴을 안고 함께 공부한 것들도 나누고,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도 나누고, 묵상한 것들도 나누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 대한 구상을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이름도 정해야했죠. 어느 날, 블로그에 대해 열띈 통화를 하다가 “야, 우리 이름을 잘 정해야 될 것 같아. 각자 생각 좀 해보자.”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느닷없이 ’진짜배기’라는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진짜를 말하고 싶고, 진짜를 생각하고 싶고, 진짜를 따라 살고 싶었습니다. 길고 지난하고 가슴을 후벼파는 고민의 시간 끝에 가장 진짜라고 생각되는 개혁주의 신학을 만나 매료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리타분하고 지겨운 건, 우린 딱 질색이었습니다. 우린 우리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공간에 매여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작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초월의 세계로 비약하게 될 테니까요. 마치 그게 가능하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우리의 고민들이 ’진짜배기’라는 이름 속에 잘 농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유함을 상징해주는 순우리말에, 진짜를 살아내고 싶은 우리의 방향도 잘 나타내 주는 이름인 것 같았습니다.(뭐 블로그 이름이야 의미 부여하면 멋있어지는 거 아니겠어요? ㅋㅋ) 이 생각이 떠오르자 마자 벌떡 일어나서 바로 다시 재국 전도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재국 전도사도 금새 좋다며 이 이름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재국 전도사의 손끝에서 멋진 로고가 탄생했고 얼마 뒤에 블로그를 오픈할 수 있었죠. 별볼일 없는 블로그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요. 그래도 새로운 (오래되었으나 우리에겐 참 새로웠던) 신학 및 신앙 체계를 만나 어쩔 줄 몰라하던 20대 중후반의 열정 넘치는 두 젊은이에게는 드디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창구를 가지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있었던 것 같네요. 공부한 것들을 나누고 싶었고, 배운 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가슴 속에 할 말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苦惱(고뇌)

그러다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진짜배기에 글이 뜸해지기 시작했죠.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히 ‘좋다’, ‘많이 배운다’ 등의 격려가 되는 반응들이 있었고, 순전히 우리끼리 재미있어서 블로그는 계속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들어오자 너무 바빠진 것이죠. 글이 뜸해진 건 사실 너무 바빠서가 아니었습니다. 게을러서 였습니다.
신학교에 다니며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알게 된 개혁파 신학은 그리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언가 말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진짜 많습니다.) 내 생각은 하찮아 보이기 시작했고, 원래 말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냥 묻어두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오기 전엔 개혁주의가 뭔지 알 것 같았고, 성경적 신학과 신앙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이 날 사로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젠 개혁주의가 뭔지, 성경이 무엇인지 더 설명하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再開(재개)

신학교 3년은 후다닥 지나가버렸습니다. 졸업 후 남겨진 건 해결책이 아니라 수많은 물음표입니다. 하지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완벽하게 알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계속해서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처음에 꿈꿨던 해외 저명 개혁주의 인사들의 블로그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진솔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원점인 것 같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민하는 과정을 ‘함께’ 하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줄곳 함께 해 온 재국 전도사와도 뜻을 나누고, 새롭게 정규 강도사님과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올바르고 굳건하게 설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올바르고 굳건하게 설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다 닮으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이웃을 사랑하기만 하면 저절로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웃 사랑과 그리스도 사랑은 함께 가야 합니다. 상보적인 것이죠. 함께 진짜배기를 꾸려나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굳건하기 위해 함께하며, 함께하기 위해 굳건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 셋은 함께 블로그를 운영하지만, 따로 글을 쓸 것입니다. 각자의 목소리가 모일 수도 모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도전을 주되 닮아가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편안하게 누군가는 강하게 누군가는 논쟁적으로 누군가는 따뜻하게 글을 쓸 것입니다. 또는, 같은 사람이어도 때론 논설로 때론 시구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글에는 독백도, 주장도, 감탄도, 권면도, 고뇌도, 질문도, 단순한 정보도, 그리고 인터뷰도 담길 수 있을 겁니다. 진짜배기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과의 소통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이번에 많은 의견을 이끌어냈던 가나안 성도에 관한 글 이외에도 많은 글들에 대해 서로의 생각들이 오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 올바른 신학이 인간의 많은 논의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의 지식이 누적된 최신의 신학이 최고의 신학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차이를 인정하고 끝나더라도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대화 속에서 현재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생각합니다.(주요 교리들이 공의회에서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겠죠. 우리 블로그가 공의회가 될 순 없겠지만요. ㅎㅎ) 고뇌하기를 멈추지 맙시다.

끝으로 다만 바라기는, 이 공간이 어떤 형태로든 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래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작은 빛이나마 비춰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궁상맞게 ’우리 이제부터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요이 땅~’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글로 문을 여는 것은, 진짜배기를 어느 정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냥 편하게 글을 써보고 싶어서였기도 하고요. 진짜배기에 대해, 그리고 필진에 대해 어느 정도 소개가 되었길 바라며 이젠 테두리에 대한 담론 말고 내용을 채우러 가보겠습니다.

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Comments 2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