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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나무, 그리고 영생을 누리는 삶

생명 나무는 선악과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성경에서 신비하고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나무 중에 하나입니다. 이 생명 나무라는 단어는 창세기 2–3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 구약에서는 오직 잠언에서만 등장하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가서야 다시금 나타납니다.

 

동산의 두 나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여러 종류의 열매 맺는 나무들을 만드셔서 아담과 하와가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두 나무를 두셨는데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요, 다른 하나는 생명 나무(עץ החיים)였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원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하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해서 설명했었습니다만, 이 나무의 열매는 어떤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무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말씀처럼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악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과 악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사람에게 선과 악에 대해 참된 지혜를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죠. 그리고 이 말씀에 순종하는 상태에서 아담과 하와에게는 생명나무가 허락되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통해 바르게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사람을 생명나무로 인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게 했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생명 나무: 열매 자체의 능력인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생명 나무의 열매는 어떨까요?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생명 나무가 늙거나 신체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1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리학에 근거하여 인간에게 활력을 부여하는 체내의 체액의 손실을 생명 나무가 해결해준다고 여겼습니다.2 그렇지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생명 나무도 그 자체의 열매 안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 나무를 성례전적인 상징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3 칼빈도 “우리는 성례의 효력이 무엇인지 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나무는 생명의 서약으로 주어진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4 즉 이 생명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마치 우리가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찬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적으로 임재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처럼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해주신다고 보는 것이죠. 생명 나무의 열매는 외적인 표징인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단회적 섭취인가, 지속적 섭취인가

그런 의미에서 이 생명 나무의 열매는 한 번 먹으면 끝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먹으면서 그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도록 만들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5 한 번 먹으면 끝나는 건지, 계속 먹어야 하는 건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과연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이에 대해서는 성경이 명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단지 아마 생명 나무의 열매는 아직 안 먹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정도입니다(그나마도 분명하진 않지만). 제 생각에는 이 나무의 성례적 성격을 고려할 때 지속적으로 먹는 것이 더 적절해보이긴 합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렸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생을 누리게 하는 나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얻는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도 사실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단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의미는 분명히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사귐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합니다. 메리데스 G. 클라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6

“생명나무가 상징하는 삶,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생은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영광-형상 안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되고 확증된 삶, 다시 말해 하나님 그분과 교제하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생명의 교제를 풍성하게 누려나가는 기쁨 가득한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시고 주시는 참된 영생의 삶입니다.

 

예배의 자리

그러므로 사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가 있던 동산 중앙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교제,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그곳이 바로 예배의 장소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예배의 장소, 가장 아름다운 장소가 바로 에덴동산의 중앙 예배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예배도 이러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생명을 넘치게 경험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여야 합니다.

 

잃어버린 생명나무와 은혜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어서 이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 3:22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사람은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라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게 아니라 죄에 물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좋은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자기 뜻을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상태의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하나님은 생명 나무를 먹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약속하셨는데, 죄로 가득한 사람이 그 열매를 먹으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해 버립니다. 죄로 가득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에 죄인은 하나님과 예배의 교제, 생명의 교제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 만으로 하나님의 예배의 자리를 망가뜨리고 더럽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영생의 의미도 파괴시켜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명 나무를 금지시키셨습니다.

이 금지 자체에도 은혜의 요소가 숨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악된 인간이 그 상태에서 얻는 영원한 생명은 지옥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만 살펴봐도 그 답이 나옵니다. 100년도 채 못하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악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이들이 영생을 소유하면 얼마나 많은 악을 저지를까요? 이 세상이 지옥처럼 변하는 것도 순식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 밖으로 보내시고 생명 나무에 이르는 길을 금지하셨습니다.

 

성전과 생명나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은 인간과 생명 나무과 영원히 완전하게 단절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생명나무로 이르르는, 생명나무에 다시 나아가는 길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전의 지성소에는 그룹들/천사들과 종려 나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레고리 K. 비일은 이것이 에덴 동산의 생명 나무를 지키는 천사들을 형상화한 것이며 성소의 등잔대는 생명나무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7 즉 구약의 예배 처소의 중심에는 에덴을 상징하는 그림들과 생명 나무를 형상화한 등잔대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돌판을 보관해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것을 가르치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와 그것을 지키는 가운데 예배 속에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생명 나무가 있었듯이, 성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것을 가르치는 말씀의 돌판과 생명 나무를 상징하는 그림과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이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맛보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예배에서 생명 나무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의 기쁨을 이 땅에서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종말 때 회복되는 생명나무

이런 생명나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잃게된 생명나무의 길을 되찾아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예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예배 가운데 그 생명의 은혜를 누릴 수 있지만, 천국에서는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풍성한 생명의 축복을 누릴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그런 생명의 은혜를 가득 누릴 곳으로서 생명수가 흐르며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는 천상의 예루살렘을 묘사합니다.

 

생명나무로 이끄는 지혜, 여호와 경외

잠언에서도 생명 나무를 다루는데요. 특별히 “인간의 복지와 건강과 삶의 풍성함과 연관되는 것”으로 다룹니다.8 사람이 삶에서 누리는 진정한 행복은 생명 나무의 효력으로 얻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잠 3:18에는 지혜와 생명 나무를 연결합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 3:18)

잠언은 지혜를 얻는 자에게 그 지혜가 생명나무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혜란 지식과는 달리 본질을 꿰뚫고 가치를 분별하게 하는 판단 능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가치있고 옳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특히 잠언은 참된 지혜를 얻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는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그것이 참된 지혜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이들에게, 그것을 따르는 이들을 생명 나무로 인도해주었습니다. 즉, 여호와 경외와 생명 나무는 원래부터 이렇게 연결된 개념입니다. 그리고 잠언에서 지혜를 얻은 자에게 그것이 생명 나무가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생명 나무로 이르는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삶에서 참된 지혜로운 삶을 따르고 지키는 자들에게 생명 나무로 이르는 길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삶으로 예배를 드려나가는 사람입니다. 잠언 말씀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것을 지키고 순종하려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순간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서 생명 나무를 일부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생의 기쁨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그분이 나를 지키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런 복을 누리는 자들이며, 그들은 나중에 천국에서 완전히 누릴 생명 나무를 이 땅에서 조금씩 누려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 3:18 말씀은 그런 지혜를 붙드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나무를 맛보아라!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참된 복, 참된 생명, 참된 기쁨을 누려나가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사람에게 주시려고 했던 행복, 죄로 인해서 잃게 된 그 행복을 지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속에서 죄와 싸우면서 맛보고 누려나가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사람들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이자 또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잠언 3장에 나오는 여러 권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5절), 그리고 나에게 주신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먼저 하나님께 드려나가라는 것(9–10절), 선을 베풀 힘이 있다면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는 말씀(27–28), 다투지 말고 포학한 자를 따르지 말라는 말씀(30–31절) 등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런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속에서, 삶 속에서,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라는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어떤 때에는 그것이 매우 힘들 수도 있고 어떤 때에는 그것이 너무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아무리 힘들때에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지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생명 나무의 맛을 맛보게 하시고, 장차 그것을 온전히 누릴 천국을 소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완전히 맛보고 누릴 그날까지 바라보며, 이 땅에서 더욱 여호와 경외를 힘쓰는 우리가 되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아멘.

 

각주

1: Aurelius Augustinus, 『신국론』 (왜관: 분도출판사, 2010), XIV, 26.

2: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STh., I q.97 a.4 resp.

3: W. A. Elwell & B. J. Beitzel, In Baker encyclopedia of the Bibl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8), 2105.

4: J. Calvin, Commentary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Vol. 1, p. 184.

5: N. M. Sarna, Genesis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18.

6: Meredith G. Kline, 『하나님 나라의 서막』 (서울: CLC, 2012), 137.

7: Gregory K. Beale, 『성전 신학』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94–95.

8: Willem A. VanGemeren,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Zondervan, 1997), Vol. 4, “Tree of Life”.

Over de auteur

재국

디자이너를 꿈꾸던 공대생 출신 신학도.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교회사를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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