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이란? 제4강 – 오직 믿음(1/2)

 

 

Summary 요약

이는 16세기 칼빈의 가장 핵심적인 논의 중 하나였다.
Sola Fide는 ’오직 믿음’이며, 이는 ’믿음만으로 얻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라는 의미이다.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칭의 구원 논쟁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틴 루터는 “교회가 서느냐 무너지느냐의 핵심이다”라고 말했으며, “이 교리는 복음 그 자체의 심장과 영혼을 만지는 것이기에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이 교리는 교회의 머리이자 모퉁이 돌로서, 이 교리가 없이는 교회는 1시간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패커는 이에 대해 “세상을 어깨에 진 (신화 속의) 아틀라스와도 같은 교리”라고 표현했다. 다른 모든 교리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믿음’이라는 이 교리는, 다른 교리들을 유지하고 다스리는 핵심교리로서 다루어져야 하며, 또한 지속적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이 교리가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 모르나 우리의 핏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결국 이 교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리가 가르치고 있는 진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이 교리는 “어떻게 불의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이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다.

많은 시편을 통해 다윗이 노래한 것과 같이, 우리의 양심은 ’죄’를 계속해서 상기시키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도록 송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 아니라 그 정의를 수호하시는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죄를 신경쓰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니다. 신약은 우리에게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냥 구원을 선포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의로우시며 죄를 중요하게 여시긴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선포하시면,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16세기의 개혁주의자들은 ’의롭다 하심’이 법적 용어라는데 동의했다. 이는 법적 칭의Forensic Justification이다. 실제 의로우냐가 아니라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포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Simul Justus Et Peccator” 우리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복음의 영광은 여전히 죄인임에도 의롭다 칭하신 것에서 드러난다!

처음에 말했던 오직 믿음Sola Fide = 믿음만으로 얻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얻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in Christ alone이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우리가 아닌 타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음이다.

 

 

Thoughts 더 생각하기

어릴 때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구원이라는, 구원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렸던 저는 칭의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기에 신경쓸 필요 없고 성화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며 간간히 영화의 구원을 바라보자는 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서 5장 8절이 심각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칭의의 구원, 곧, 구원의 시작은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목사님과 신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칭의의 구원을 부르짓고 사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칭의의 구원이라는 교리는 우리의 상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이 죄는 단지 ’나쁘고 더럽다’를 너머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무능한 것이죠. 우리 힘으로는 의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Simul Justus Et Peccator!

루터의 힘있는 이 말을 자신의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외칠 것입니다.

‘이 죄인아! 니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이 의인아! 넌 그래도 아직 죄인이다!’

오직 말씀과 함께 오직 믿음도 이 시대에 너무나 많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오해와 반박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누군가는 오직 믿음이 단지 믿기만 하면 되며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오해합니다. 또 누군가는 오직 믿음은 거짓이며 행위가 수반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반박합니다. 또 누군가는 칭의란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법적 선포라는 사실을 거부합니다. 다양한 오해와 반박들에 의해 전통적인 칭의가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루터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교회사 속에서 유례없이 치열한, 교회가 서느냐 무너지느냐를 결정하는 결전의 장소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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