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목사님은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를 가져다 쓰십니다 – 제가 걱정해야 할 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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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익명을 요청한 여성청취자의 질문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 저는 재원이 넉넉하지 않은 아주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년 간 알게 된 것은 저희 목사님이 점점 더 많이 ‘다른 설교자들이 했던’ 설교시리즈를 가져다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알아차리고서, 인터넷 검색으로 설교개요를 찾아내거나 설교시리즈를 마친 다른 교회를 찾아내서 거의 똑같은 설교를 미리 듣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것이 성경적인가요, 아니면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저로서는 이것이 수긍이 가지 않는 일이면서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청취자 분이 이 문제를 두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아닌, 그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를 물어보셔서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제 생각이 확고해서 쉽게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질문이어서 그렇습니다. 청취자 분이 어떤 전략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질문하셨다면, 그렇게까지 확고하거나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텐데 말이지요.

저는 수년간 어떤 상황을 가정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설교나 설교개요를 제 것인 양 가져다 쓰면서도 평온하다거나 그것을 제 설교로 의식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번도 그런 상황을 가정할 수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한 데서 나온 나팔소리trumpet blast가 아닌, 타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한 데서 나온 울림을 자기 설교라고 일컫는 것이 솔직히 저로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로 느껴집니다. 제 설교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한 울림이어야 마땅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목소리의 울림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간에 타인을 거쳐서 나온 하나님의 목소리의 울림의 울림이어서는 안됩니다.

저의 신념이 그것입니다. 이제 그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그리고 제가 표절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여 들으십시오. 표절은 명백하게 죄입니다. 하지만 저는 타인의 설교나 설교개요 사용이 문제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것이 다른 설교자에게서 가져온 것임을 온전히 시인하여 그 경우 표절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여전히 문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를 두고 목사를 용인해줄 것입니다. 어쩌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배 중에 하는 설교는 성경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습니다. 설교는 흔히들 생각하는 말쑥한 인상을 줘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생각건대 설교는 하나님의 진리의 본성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 나온 모든 성경의 영감성과 유익함을 서술한 직후,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 4:1–2) 그래서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전파해야 할 말씀의 유익함이라는 맥락에서 그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전파하다preach”로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가르치다teach”와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포하고 선포된 것을 크게 기뻐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설교를 정의하자면 그것은 말씀을 해명하는 크나큰 기쁨입니다. 설교 안에 항상 진리와 진리에 대한 해명이 있다는 점에서 “해명하는expository”이고, 설교자 자신이 해명하는 진리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크나큰 기쁨exultation”인 것입니다. 그는 억누를 수 없는 기쁨으로 선포합니다. 선포하는 진리를 크게 기뻐합니다. 진리를 통하여 진리 안에서 예배합니다. 따라서 설교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똑같지 않은데, 설교에 해명과 가르침이란 요소가 있긴 해도 그런 것입니다. 또한 디모데후서의 맥락은 교회이므로, 여기서 설교는 여러분이 떠올릴 법한 목청을 높여 선포하는 길 모퉁이 거리전도일뿐더러 매주매주 교회에서 하는 말씀선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핵심은 바로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고 진리의 가치를 느끼는데 있는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자가 본 아름다움의 선포이며 그것은 설교자가 느낀 아름다움에 대한 크나큰 기쁨인 것입니다.

타인의 설교를 가져다 쓰는 것이 문제되는 첫 번째 이유는 그 설교들이 설교자 편에서 진리의 아름다움을 보고 진리의 가치를 느끼는데 실패했음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자 자신이 말씀 속에서 마땅히 이해해야 할 바를 도외시한 채,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 그가 이해한 것을 가져다 쓰는 짓입니다. 설교자 자신이 말씀을 읽을 때 마땅히 느껴야 할 바를 도외시한 채,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 그가 느낀 감정을 빌려다 표현하는 짓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고, 이런 설교자에게는 서둘러 치료책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타인의 설교를 가져다 쓰는 것이 문제되는 것은,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목사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본분이 그것입니다. 목사는 자신이 말씀을 이해하고 성도들이 말씀을 분명하게 알게 하는데 요구되는 것이 어떤 것이든 거기에 시간과 수고를 쏟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교회의 목사로서 그의 본분은 말씀을 읽고 이해하되, 그 말씀을 자신의 양무리의 필요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도들이 삶의 자리에 적용하지 못할 언어로 설교하는 사람이어서는 안됩니다. 목사가 이 양무리를 보호하고 먹여야 하는 까닭은 그가 자기 양무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17에서 말씀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설교자의 부르심을 이 구절–“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 정의합니다. 설교자가 할 일이 그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기쁨으로 받을 때까지 그는 힘써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제가 타인의 설교개요와 타인의 설교 사용을 둘러싼 문제 전체를 주저하면서 답을 드리는 세 번째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디모데전서 3:2은 감독이 가르치는 솜씨나 실력이 있든지, 또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연구하고 설교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그것이 부르심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은사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만약 말씀연구와 설교에 은사가 없다면 우리 설교자들은 설교자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설교를 가져다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사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가져다 써야 한다면 그는 설교하는 은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다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고 맛보고 전하는 그것이야말로 설교하고 가르치는 은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목사더러 유창해지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목사에게 세상의 탁월한 달변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기발한 표현 문구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몇몇 특별한 이들이나 지닐 법한 성경본문에 대한 깊은 통찰이나, 가장 적실성 있는 뉴스나 미디어 관련자료와 같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이 텍스트의 의미와 충돌하는데 진실하고 충직한 태도이고, 이것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위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온 열정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성도들이 원하는 바는 자신들의 목사가 목사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목사님, 우리를 위해 텍스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주십시오. 목사님, 우리를 말씀으로 사랑해주십시오. 목사님, 말씀 속에서 이해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시오. 누군가가 이미 조리해 놓은 즉석 조리품 같은 타인의 설교를 원치 않으며, 목사님이 손수 한 요리와 같은 그런 설교를 원합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분이 주시는 말씀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간청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을 목사님이 볼 때까지 성경본문과 씨름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는 타인의 설교를 가져다 쓰는 문제가 무척이나 염려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은사와 새로운 부르심과 새로운 눈을 타인의 설교개요와 타인의 설교를 사용하는 모든 목사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 인터뷰(2016년 4월 4일)

주제: 설교와 가르침

시리즈: 존 파이퍼 목사님께 물어보세요(Ask Pastor John)

Over de auteur

주성

번역자를 꿈꾸던 시절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를 만나 그의 설교와 더불어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신앙 선배들의 유산을 어느덧 함께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현재 기업의 기술문서를 번역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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