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일 났다. 자신감이 자괴감으로 바뀌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친한 동생이 사역하는 교회의 중등부 수련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기로 한 후, 나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수련회 내내 사도신경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내 임무였고, 유초등부와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이미 다 가르쳐본 주제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수련회 당일, 버스에 몸을 얹고 첫 강의 때 말할 내용들을 되새기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잘 할 수 있을까. 수련회 참석자들 중에 함께 신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더 불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수련회 장소에 도착할 무렵, 같은 버스에 탄 중학생 아이들이 서로 떠드는 소리가 내 가슴에 박혔다.
“지난 번 수련회 강의는 너무 많았어!”
“야, 강의 시간은 자라고 있는 거야!”
아마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았다. 귀엽기도 해서 피식 웃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강의를 시작하자 아이들의 산만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아니면 내가 너무 긴장했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딴짓하거나 고개 숙이고 있으면서도 들을 것은 다 듣는 아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말려버린 느낌이었다.
사도신경을 가르치기에 앞서서 이 세상이 말하는 진리와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려주고, 거기서 돌이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가 말하면서도 스스로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며 간신히 첫 강의를 마쳤고, 나를 초청한 동생은 내 강의를 간단히 잘 요약해주며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난 생각했다. 아, 큰일이네.
2.
강사에게 배정된 숙소로 들어와서, 정말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기도가 안 나올 수 없었다. 지혜를 주시고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원래 쉬는 시간에 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 포기했다. 읽으려고 가져온 책들도 덮어놓고, 기도하면서 이후 집회 때 전할 말씀과 강의 내용을 되새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했다.
놀랍게도 사도신경의 고백들이 내 마음 속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무미건조하게 느끼던 내용들이 향기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후 저녁 집회는 성공적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강의는 조금 힘든 감이 있었지만, 다시 저녁 집회 때는 더 뜨겁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한 아이가 따로 찾아와서 너무 좋았다고 말해준 것도 굉장히 힘이 되었다. 무려 중학생인데!
수련회 내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마지막 집회에서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교회의 아름다움이었다. 개인적인 신앙 생활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쉬운 요즘 시대에 교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충만하게 나타내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엡 1:23).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된 교회의 성도들이 그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되는 모습은 영원 전부터 사랑 그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나간다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지를 경험하게 되고 세상에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교회가 될수록, 하나님이 누리시는 기쁨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교회의 타락한 모습들을 여러 경로로 접하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교회에 환멸이나 싫증을 느끼기 전에 교회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경험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서로 함께 예배 드리면서 마음이 하나로 모아질 때 느꼈던 행복을 그들도 누리길 원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내가 신학대학원을 가기로 결정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항상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랫동안 잊었던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할 때 그것은 아이들에게 호소하는 것인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호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전에 가졌던 뜨거웠던 마음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3.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것은 혹시 내가 아이들 앞에서 뜬구름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라는 것을 경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설득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나부터 교회가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었던 그 수련회 속에서조차 아이들과 충분히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섬기러 오신 선생님들과도 교제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나는 집회나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지쳐서 쓰러져있거나 다음 강의를 준비하는데 집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색함도 한 몫 했다. 이번 수련회가 끝나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이들이니까, 라고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아이들은 중간중간에 만날 때 나를 살갑게 대해주고 뭔가를 잔뜩 이야기하긴 했다. 너무 말이 빨라서 못 알아 듣긴 했지만….
이런 것들은 수련회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도 굳이 교제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다른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더 힘을 많이 들여야 한다. 나도 교회 안에서 노력하고는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알다보니 교회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듣게 된다. 그냥 가슴 아픈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분노하고, 기가 막히게 되는 일들이 참 많았다. 수련회가 끝난 직후에 그런 이야기를 또 하나 들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흘렀다.
나 스스로도 교회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할 때가 많고 그것을 추구하기 힘들어할 때가 많으며, 현실 속의 교회들 또한 아름답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하나님, 왜 이런 걸까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는 그 교회가 왜 이리 아름답지 못할 때가 더 많아 보이는 걸까요?
4.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을까. 주일에 듣게 된 설교 말씀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들의 연약함과 악함, 그리고 장래에도 하나님을 따르기보단 그 반대를 선택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었다. 게다가 그날 마침 읽은 책도 그런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기쁨과 위로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 그렇구나.
교회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교회가 하나님을 닮아가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겠지만, 교회가 그렇지 못할 때에조차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사랑할 줄 모르는 자를 사랑하시며, 거절하는 이들을 받아주시고,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분이시다. 심지어 교회가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세상을 좇아 갈 때에도, 그러한 악함으로 인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를 지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더욱 더 빛이 난다. 그런 이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교회 안에서 더욱 더 충만해진다.
교회에서 성찬을 할 때 처음으로 떡과 잔을 받으러 차례차례 나오는 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찢으신 살과 흘리신 피를 나눠 주시고 한 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드러내며 성찬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교회 안에서 선포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앞으로도 교회에는 여러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을 닮은 것 같지 않을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당신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실 것이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그렇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다.
Comments 4
할렐루야
참 좋은 글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ㅋㅋㅋ 신앙탐구노트 누리 정말 재밌게 읽었었는데!!
Author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ㅎㅎ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