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65. 아달랴와 요아스

이 시리즈는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읽고 기도로 마치도록 구성 되었습니다.

말씀: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 역대하 24장 22절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딸 중에는 아달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아달랴는 유다 왕국의 왕 여호람과 결혼을 해서 유다의 왕비가 되었어요. 아달랴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을 가지려는 욕심이 많았어요.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 후 일찍 죽게 되자, 아달랴는 욕심에 눈이 멀어 다음 왕이 될 후보인 왕자들을  다 죽이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제사장 여호야다는 당시 아기였던 왕자 요아스를 숨겨서 길렀어요. 그러는 동안 아달랴는 유다를 다스리면서 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어요.  사람을 죽이는 나쁜 짓도 했지만, 더 악한 행동은 바로 유다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도록 만든 것이었어요.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우상을 섬기도록 유혹한 거에요.

세월이 흘러 요아스 왕자도 어느덧 7살이 되었어요. 물론 아직 어린 나이였죠. 하지만 아달랴는 계속 나쁜 죄를 저지르고 있었어요. 제사장 여호야다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보관된 다윗 왕의 무기들을 사용해서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요아스 왕자를 데리고 나와서 유다 왕국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아달랴는 반역이라고 소리치면서 화를 냈어요. 하지만 유다의 백성들은 새로운 왕의 탄생을 크게 기뻐했어요. 물론 아달랴를 따라서 우상을 섬긴 백성들도 많았겠지만, 유다 백성들은 아달랴가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았을 거에요. 그래서 백성들은 아달랴의 편을 들지 않았고, 요아스라는 새로운 어린 왕을 환영했습니다. 결국 욕심에 사로잡혀서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던 아달랴는 권력을 잃고 심판을 받게 되었어요. 자신이 저지른 악한 죄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답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조언을 따라 나라를 잘 다스려 나갔어요. 유다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했어요. 특별히 성전에서 오래되고 망가진 부분들을 고치기도 했구요.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을 부숴버리기도 했죠.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한 거에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세월이 흐르고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아 죽게 되자,  요아스의 마음이 바뀌어 버린 거에요. 무엇보다 요아스 왕은 다시금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도록 허용했어요. 충격적인 일이었죠. 하나님을 잘 따르고 우상 신전을 없애버렸던 요아스 왕이 이렇게 바뀌어 버렸으니 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서 요아스와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하셨어요. 특히 여호야다의 아들이었던 스가랴도 그 중 한 사람이었죠. 그렇지만 요아스는 스가랴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더러, 그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스가랴를 결국 죽여버리는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여호야다는 목숨을 걸고 요아스를 지켜주고 왕이 되도록 도와줬는데, 요아스는 스가랴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은 거에요. 사실 여호야다에게만 그런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죠. 요아스를 왕이 되도록 도우신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어요.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척 하지만, 사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정말 변화시켜 주시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어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려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어요.

사실 이 이야기는 그냥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어요.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은 스가랴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스가랴는 불행하게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의 삶을 다 알고 계셨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주신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불행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알려주신 거에요. 

어떻게 그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죄라는 짐을 지고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이에요. 사실 누구보다 불행하고 억울해 보이는 죽음이었죠. 그렇기 떄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어려움을 아시고, 그 어려움을 직접 감당하고 해결해주신다는 약속이기도 하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마음을 변화시켜주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믿을 수 있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Over de auteur

재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17세기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의 교회론을 연구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의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많다.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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