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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도읍(都邑), 「실로」

 

I. 옛 도읍(都邑)을 향하여

  천도(遷都). 그것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절체절명의 사건입니다. 

  요즘 잘 나가는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공감하시겠지만,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조선은 고려의 수도(首都)였던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그 이유는 개경에 이성계를 반대하는 전통세력의 기반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또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제 개경의  지덕(地德)이 쇠하여 새 왕조의 수도로 삼기에는 불길하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사사전편찬회, 『한국고중세사사전』, (가람기획, 2007)]

  그러므로 천도는 이전의 시대가 종식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주며, 또한 남겨진 혹은 버려진 옛 수도는  천도의 이유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사람들에게 남겨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초기부터 왕국 시대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은 다름 아닌 ‘실로’였습니다. 비록 그것이 중앙집권적인 의미에서 나라 전체에 군사적이고 행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로는 종교의 중심이자 이스라엘의 초기 정체성의 기반이 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곳에 성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의 수도였던 실로는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권력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천도(遷都)하셨습니다. 실로는 끝났고, 얼마 간의 공백이 있긴 했지만 결국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확고한 수도로 자리잡게 됩니다. 

  우리가 개경을 방문하게 되거나, 중국의 낙양이나 장안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겁니다. ‘이 영화로웠고 유서 깊은 도시는 어쩌다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무엇이 천도의 이유가 되었는가?’ 등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따라 실로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실로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이곳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상징으로 다가왔을까요? 실로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가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천도를 경험하고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런 질문과 함께 이 유서 깊은 옛 도읍(都邑)을 탐험해보겠습니다.

 

II. 에브라임의 영광 

1. 둘러보기: 실로에 대한 개관 

  실로는 벧엘의 북쪽 10 마일 위, 세겜 남쪽 12 마일 아래, 세겜과 예루살렘을 잇는 길의 동쪽 3 마일 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자세한 위치는 삿 21:19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언급은 성경 이전에 있던 어떤 문서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알 수 있는 것은 청동기 중기(Middle Bronze II) 시대에 이 지역이 소도시로 번화한 고고학적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현재는 세일룬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실로는 벧엘과 세겜, 그리고 사마리아와 더불어 사마리아 산지에 위치해있는데, 사마리아 산지는 유대 산지의 높이만큼 높지는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가 내리는 곳이며, 곡식을 잘 생산할 수 있는 넓은 분지가 이 지역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즉 실로는 해발 2000피트에 위치한 평원으로, 농사를 하기에 적절한 비옥한 토지를 갖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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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실로의 위치(참조: 어코던스)

  특별히 12지파에게 땅이 분배되었을 때, 에브라임이 실로를 둘러싼 주변의 지역들을 분배 받았습니다. 물론 실로 성읍 자체는 레위사람들에게 주어졌죠(수 21:1-3). 이곳에 성막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 이스라엘의 중심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실로가 성경에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야곱이 자식들에게 축복을 할 때, 유다를 향한 축복에서 이 이름이 등장합니다(창 41:10). 그런데 이 명칭이 진짜 실로라는 지명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해요. 지명이라는 견해도 있고 메시야를 가리킨다거나 유다를 가리킨다는 등 4가지로 견해가 나뉩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살펴보겠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정리하자면, 실로는 비옥한 곳이면서 주요 도시들 사이에 있었고, 또한 성막이 있는 이스라엘의 중심지이자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이 곳은 그야말로 한 나라의 도읍지로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2. 떠오르는 도시: 가나안 정복 전쟁과 실로

  창세기에서 언급된 실로가 성경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은 가나안 정복전쟁 때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와 정복전쟁을 벌일 때 실로가 등장하며, 여호수아는 이곳에 회막을 세웠는데,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로를 정복했다는 것이 언급됩니다(수 18:1).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땅이 이스라엘에게 넘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때부터 실로는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습니다. 

  사실 실로라는 명칭이 언제 붙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불명확합니다. 야곱이 축복을 할 때 지명으로서 실로를 언급한 것이라면 족장 시대부터 실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스라엘이 정복한 이후에 실로라는 지명으로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료도 없으므로 창세기 49:10의 실로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되는지가 우선권을 가질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직접 이스라엘 지파들을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수 18:10). 회막이 이곳에 있었고, 땅도 이곳에서 분배했으며, 이곳은 레위사람들에게 주어진 곳으로서 성막 곧 하나님의 집이 이곳에 위치하게 되었죠(삿 18:31). 또한 정복전쟁이 거의 끝나고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면서 제단을 쌓아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쟁을 위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실로에 모였습니다(수 22:11, 12).

 그러므로 이곳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나중에 여호수아가 세겜으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모으는 이야기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실로는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실로는 가나안 정복전쟁 때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회막이 세워진 곳으로서 정복전쟁 당시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수행하는 곳으로 기능했고, 성막이 이곳에 있음으로 인해 또한 종교의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중심적인 기능을 하는 도시가 자신들의 지파의 땅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자부심을 강하게 갖는 이유 중의 하나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3. 영광의 절정: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곳 

  이제 실로는 발돋움하여 이스라엘의 중심지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막이 있는 곳으로서 이곳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주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곳은 종교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신 12:14)은 일단 실로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나아와 번제를 드려야했고, 재판을 해야하는 장소였으며(신 17:8-10), 십일조와 처음난 것들과 낙헌제물 등을 자신의 성이 아니라 이곳에 와서 자녀와 노비와 성중의 레위인들과 함께 먹어야 했습니다(신 12:17, 18). 

  이 곳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절기를 행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신명기에 명령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3번 절기마다 이 곳에 나아와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신 16:16). 그리고 그렇게 절기를 지키는 모습을 사사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삿 21:19). 물론 사사기에서는 매 년 3개의 절기를 철저하게 지키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매 년 절기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사무엘상에서 절기를 지키러 실로에 가는 엘가나의 모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삼상 1:3). 그리고 제사장이었던 엘리는 실로에서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사사 시대 동안 사사들이 바뀌면서 권력의 중심이 조금씩 바뀌었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로는 그 기간 내내 변함없이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모세의 계승자 여호수아와 이 실로의 존재로 인해 가나안 정복 초기부터 에브라임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이 사사기를 통틀어서 등장합니다. 기브온과 입다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에서 그런 것이 잘 드러나죠. 

  아무튼 실로는 이렇게 초기 이스라엘의 정신적 수도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곳에 여호와께서 계신다는 강력한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 곳은 원래 비옥한 지역이었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도 함께 했을 것이며, 더불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절기마다, 제물과 곡식들을 가져오는 이들로 인해 전국의 풍요로움이 모이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사사 시대가 비록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실로는 이스라엘의 중심지, 곧 도읍으로서 강력한 상징성을 갖는 도시이면서 이스라엘의 부요함 또한 상징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실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도시, 하나님의 도시가 된 것입니다.

 

III. 천도(遷都): 쇠락한 도읍

1. 몰락의 길을 걷다

  그러나 이런 영광의 시간도 어느덧 흘러가고 실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천도의 때가 다가온 것이죠. 

  몰락의 조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데, 하나는 삿 18장에 등장하는 미가와 단 지파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종교적 타락(삿 18:30-31)과 베냐민 지파의 사건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타락(삿 21:20-21)입니다. 사람들은 점차 실로에 있는 성막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견대로 하나님을 재단하고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 타락은 도덕적인 타락으로 연결되어 절기에 기쁨이 가득해야할 축제를 범죄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이것이 그들에게는 지혜있는 행동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영광을 누리던 실로는 이런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타락과 함께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은 사사 엘리의 시대 때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엘리의 아들들의 타락한 모습은 실로의 몰락이 눈 앞에 다가왔음을 보여줍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을 뿐더러 제사를 멸시했고(삼상 2:12, 17),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삼상 2:22). 일반 사람들과 레위 지파와 단 지파의 종교적 타락과, 이스라엘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준 다음에는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제사장이자 사사의 아들들, 즉 최고 지도자 계급에 속하는 이들의 타락에까지 이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도시였던 실로가 이제 타락의 끝에 이르렀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2. 영광이 떠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로의 영광은 엘리의 시대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으로 인해 다가오게 되었는데, 아벡 전투에서 패하게 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오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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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벡(에벤에셀) 전투와 언약궤를 빼앗김(Holman Bible atlas)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언약궤를 빼앗길 뿐더러 홉니와 비느하스는 물론 엘리마저 죽음으로 이스라엘은 큰 타격을 입게 되고, 특히 실로가 이 때 파괴를 겪게 됩니다. 성경이 실로의 성전의 파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고고학적으로 이 지역에 파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후에 성경에서 실로가 심판 받은 것을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이 때 실로가 파괴를 겪었다는 것은 신뢰할 만합니다. 물론 이후 실로 출신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아예 거주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까지 바뀐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실로의 파괴는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있는 그 풍요함과 종교의 상징이 파괴되버린 것입니다. 언약궤를 빼앗긴 충격과 함께, 이스라엘은 그 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주던 종교적 상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죠. 언약궤도 큰 상징성을 갖고 있지만, 실로의 상징성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충격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집이 거하는 하나님의 도시가 이렇게 비참하게 멸망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고백하면서 “영광이 떠났다”라고 말한 것(삼상 4:21)은 비단 언약궤를 빼앗긴 상황만이 아니라 실로의 몰락까지도 잘 표현해줍니다.

  실로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고 실로가 몰락함으로써,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곳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에게 실로가 주는 상징성은 컸기 때문이죠. 자신들의 타락과 무관하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니까 그곳은 안전하고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곳에 거하셔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이 이루어진 것인 동시에 신명기에서 말씀하신 언약의 저주가 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떠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천도를 하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보이셨고 그들을 심판하셨으며, 이 천도를 통해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밝히고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했고, 언약에 대해서 그들이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풍요롭고 또한 종교의 중심지였던 실로의 몰락을 통해, 그 모든 것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의 순종의 삶이 중요하며, 그것 없이는 다른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미스바에서의 성회는 그것을 깨달은 이스라엘의 회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언약궤가 기랏여아림에 가고, 제사장들은 놉 땅에 거했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가 가고 성전이 세워짐으로써 하나님의 천도는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도읍 예루살렘에서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게 됩니다. 그리고 실로는 이제 옛 도읍이 되었습니다.

 

3. 옛 도읍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옛 도읍으로 전락한 실로는 그 이후에도 성경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열왕기상에서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등장하는 것을 우린 확인할 수 있습니다(왕상 11:29). 실로는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히야도 실로에서 살고 있었죠. 

  아히야는 실로에서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 하나님의 집이 있는 곳, 중심 중의 중심지가 되어가는 것을 보았고, 또한 솔로몬 말년으로 가면서 타락의 조짐이 많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그토록 풍요로웠던 이스라엘의 중심지 실로의 비참한 결말을 기억해냈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기억하면서 솔로몬 때 누리는 이스라엘의 놀라운 영화로움에 깊은 관심을 주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로를 기억하면서 외적 풍요로움과 종교성의 풍성함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차려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히야는 그것을 너무 쉽고 빨리 잊어 결국 실로의 길을 가는 것 같은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결국 왕국은 둘로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니 말입니다.

  아히야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우린 추론할 수 있지만, 시편 78편 56-64절 같은 경우 이 문제는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됩니다. 여기선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며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실로를 들고,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 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시 78:56-64)

 

  그러므로 실로는 이제 후대 사람들에게 하나의 강력한 경고가 됩니다. 가장 풍요롭고 종교의 중심지였던 실로도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디라도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했다면 심판이 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실로는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강력한 경고가 됩니다.

  또한 예레미야도 이에 대해 경고하는데, 악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면서 실로를 보고 하나님이 악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확인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렘 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신뢰하는 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곳에 행하겠고” (렘 7:12-14)

 

  그러면서 심판을 선언하며 실로처럼 할 것이라고 전합니다(렘 26:6). 이제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는 강력한 증거로서 사용받게 되었습니다. 실로는 그 자체로 산 증인이 됩니다. 실제로 그것이 타락으로 인해 멸망했기 때문에, 그것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예루살렘이 더 오래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예루살렘도 실로와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IV. 여행을 마치며

  그렇게 실로는  그 찬란했던 과거와 더불어 멸망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스라엘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옛 도읍이 되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끝내 타락의 길을 가며 예루살렘까지 멸망하게 되긴 했지만, 실로는 경고의 기능을 감당했습니다. 아무리 풍요로운, 종교 생활로 인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절기들로 인해 축제로 웃음이 끊이지 않던 곳이라도 결국 언약을 떠난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천도였고, 쇠퇴였고, 파괴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가 가졌던 강력한 상징성은 이스라엘에게 그만큼 큰 파괴의 충격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가장 중심이자 정체성을 지켜주는 도읍은 어디고 무엇인가요? 초 대형교회에 있을까요?  어느 곳이 되었던, 어떤 것이 되었던 간에 우리는 옛 도읍 실로를 보면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은혜 언약 가운데 정말 그 은혜를 누리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언약 백성의 삶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천도를 겪은 버려진 옛 도읍 실로에게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니까요.

Over de auteur

재국

디자이너를 꿈꾸던 공대생 출신 신학도.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교회사를 공부 중이다.

Comments 5

  1. 렘 7장을 읽다가 주께서 실로에서 행하신 일에 대하여 알고 싶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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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실로에 관해 역사적이며, 신앙적인 글을 보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 나라와 교회가 실로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도 기도하며 올바른 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3. 성경읽기표를 따라 읽다가 실로의 황폐함이 궁금해 들어왔는데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올 봄에 영국 런던에 몇일 여행을 했는데 스코틀랜드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에딘버러에서 하는 교회사 연구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귀한 지식을 나누어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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