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명료한 성경

기독교 신앙에 있어 성경의 위치

신학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그분이 무엇을 행하셨는지, 우리가 믿어야 할 규칙은 무엇이고 살아야 할 교훈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을까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위치는 근원적이고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요 5:39),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요 1:1). 신앙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성경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는 성경을 바라보는 견해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을 이끈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오직 성경’(SOLA SCRIPTURA)를 외쳤습니다. 교회의 전통, 그리고 교황의 권위를 성경과 동급으로 여겼던 로마 가톨릭에게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것은 다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성경의 권위였습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만의 주장은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 해석과 설교에 관한 자신의 책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성경의 권위가 흔들린다면 신앙이 절뚝거릴 것이다.” [1]

 

성경의 권위에 대한 견해 차이: 명료성 문제

그러나 성경의 권위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성경의 권위 자체에 대한 의심이 주를 이루었다면, 오늘날에는 성경에서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한 의심이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계몽주의 시대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낙관적인 신뢰가 있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이성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성을 의심하며, 어떤 절대적인 틀이나 가치관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떤 문제에 대해 성경이 분명한 답을 준다고 말하는 것은 교조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더 나아가 이성주의에 물들어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에 빠진 것이라는 비난도 받습니다. 어떻게 초월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제한적인 사람의 언어에 담길 수 있냐는 비난을 받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잘 모르겠다, 혹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겸손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성경은 명료한가

그래서 오늘날에는 “성경의 명료성”에 대해 되돌아보고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명료성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종교개혁 때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평신도가 아닌 교회가 성경을 해석해줘야 한다고 했고, 개혁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이런 주장은 오늘날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말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진 것일까요?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드러나는 교리들이 인간의 이해력과 동등한 수준의 것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 명료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2] 이것은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웨인 그루뎀은 성경의 명료성에 관한 자신의 글에서 성경 해석에 필요한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

  1. 성경은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한꺼번에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2. 성경은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아무 노력 없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3. 성경이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이 일반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4. 성경은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읽는 자들이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없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5. 성경은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성령의 도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6. 성경은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사람이 잘못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7. 성경은 자신이 이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완전히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르면, 성경이 명료하다는 것은 결코 교만한 주장이 아닙니다. 이성주의적인 것도 아닙니다.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엎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 겸손하지 않는 자는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웨인 그루뎀은 더 나아가서 만약 성경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평이하게 이해될 수 있는 의미’를 벗어나서 새롭고 독창적인 해석을 주장한다면, 일반 성도들은 그들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4]

 

하나님께 의존하는 겸손한 신학

우리가 성경이 명료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웨인 그루뎀은 성경의 명료성에 대해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과 분명하게 소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5]

하나님께서 우리와 소통하시려고,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방편을 거부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안에 담겼으며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의 이성은 초월적인 하나님 앞에 참으로 보잘 것 없지만, 또한 그 이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시대가 이성에 대한 의심이 있는 세대기 때문이죠.

물론 성경이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 기도하고, 더 고민하고, 겸손한 자세로 서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우리 신앙에 중요한 핵심들을 알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말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성경을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통을 따른다는 것이 성경을 잘 읽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웨인 그루뎀이 말했듯이,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는 성경 읽기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성경의 명료성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보다 각자의 생각과 시대 정신이 우위에 서는 경우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경의 명료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1.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I.37.41.  ↩
  2. A. A. Hodge, Outlines of Theology: Rewritten and Enlarged, p. 85.  ↩
  3. W. Grudem, “The Perspicuity of Scripture,” Themelios: Volume 34, No. 3, p.294–301.  ↩
  4. W. Grudem, “The Perspicuity of Scripture,” p.307.  ↩

  5. W. Grudem, “The Perspicuity of Scripture,” p.303.  ↩

Over de auteur

재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17세기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의 교회론을 연구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의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많다.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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