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존 파이퍼 목사님의 책 『하나님을 기뻐하라』 에 대한 리뷰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머릿말에서 ‘나는 어떻게 기독교 희락주의자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이 ‘기독교 희락주의자’가 된 이유는 간략히 다음과 같습니다.
-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며 그것이 행동의 동기이다.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보다 나은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진정한 문제는 ‘진정으로 깊은 만족을 주는 기쁨’을 추구하지 않고, 너무 ‘쉽고 가치 없는 기쁨’을 추구하며 거기서 만족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 참된 기쁨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축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이다. 즉, 모든 기쁨을 정당화시키며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죄를 기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명하셨는데, 기쁨은 찬양의 필수요소이며, 찬양은 기쁨을 완성시킨다.
- 하나님을 갈망하고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매우 성경적이다.
이것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함으로써(by)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건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의 핵심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핵심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찬양은 바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찬양은 찬양이 아닌 것이죠.
우리는 구원을 받고나서 하나님께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의무에 복종하기도 하고, 자신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빚을 갚는다고 하면, 대체 그 많은 은혜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을 갚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자신의 모든 명령 속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고난 가운데서도 말이죠.
우리는 신앙생활을 의무적이고 단조롭고 지겨운 것으로 생각하며 다른 취미활동에 마음을 쏟아 거기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중심에 두는 것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이라면, 우리는 저급한 기쁨을 추구하고 그것에 만족하고 있을 뿐인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많은 헌신을 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헌신하셨다는 것과 우리는 그것을 통해 진정한 기쁨을 누려야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쉽게도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의 중심에는 믿음이 없을 때에는 알지 못했던 참된 기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쁨.
참된 기쁨.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더욱 넘치는 기쁨.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저급한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
이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맙소사, 신자의 삶이 얼마나 단조로와질까요.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시 16:1
우리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 쉽게 놓치거나, 너무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덧글. 이 글은 2010년에 존 파이퍼 목사님의 『하나님을 기뻐하라』에 관한 챕터별 리뷰를 수정한 것입니다. 문체와 내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순차적으로 수정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쓴 글을 보니 그때는 글이 깔끔하진 않지만(지금도 그닥;) 굉장히 감성적으로 적었네요. 지금은 오히려 너무 무미건조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