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이 땅과 저 하늘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늘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삶의 목적을 단순한 이 땅의 성취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에 두며 사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을 향해 이 땅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 땅에서의 삶은 절대로 쉽게 간과되거나 과소평가될 수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현대를,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실재’입니다. 아니 오히려 무시할 수 없는 것에 가깝습니다. 현실은 거대하고 그 거대한 구조 안에서 ‘정신’을 바싹 차리지 않으면 휩쓸리고 마는 것이 우리의 실존적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세대의 특징과 현실을 깊이 알고 그것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향해 살아야 합니다. (복잡한 필요이지요.) 세상 속에서 마음을 지키며 그리스도인다움으로 영향과 충격을 가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향 하는 모습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바른 현실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현실 인식과 방향에 대한 고민
그렇다면 작금의 현실은 어떠할까요? 어떤 구조가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를 구성하고 그 구조 속에서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 있을까요? 대강의 얼개로 아주아주 느슨하게 생각해보면 특별히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기능이 바르게 작동하고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 구조 속에서 사회는 ‘정치’라는 방법을 통해 경영되고 있으며 그 방법은 방향을 결정하는 거의 가장 핵심적인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그 방법을 통해 결정되는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은 그 구조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간과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는 개인의 삶의 방향과 더불어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은 매우 중차대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특별한 방향을 지향하며 사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는 대 원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는 이 방향을 관철시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원칙과 사명을 감당하며 살기 위해,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의 책임 있는 삶의 태도가 요구됩니다. 사명과 이 땅의 경영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청지기인 그리스도인은 사회를 향해 바른 태도를 취할 의무가 있는 것이지요.
결국 (다시금) 사회를 향하여 바른 태도를 취하려면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과 평가가 선재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그리고 사실 역사라는 전체의 맥락 안에서) 사회의 경영은, 정치라는 방법을 통해 관철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치라는 체계 구동 방식 자체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하고 그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그 입장에 충실하게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세상이 교회에 요구하는 정치에 대한 태도
특별히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과 그것에 대한 한국 교회의 입장은 정말 기묘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굉장히 짧은 시기에 압축적인 정치 경험을 했기 때문이지요. 교회와 거기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한 세기 전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 전파된 기독교, 그리고 당시 선교사들의 상황, 그들의 포교, 기독교의 박해와 정착, 해방, 독립, 분단, 전쟁, 산업화, 유신정권, 군사정권, 민주화투쟁 등등의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맥락은 교회, 그리고 거기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특이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많은 수의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된 가르침은 정치 상황에 대한 평가가 포함되어 있었고 특정 정치적 입장에 편중되도록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혹은 그것에 무관심했지요.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사회 상황은 그런 교회 혹은 기독교를 향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눈에 보이는 교회의 정치 사회상황에 대한 답 혹은 의견을 전혀 요구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21세기의 1/10을 훌쩍 넘어가는 시점에 교회가 놓인 상황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교육받은 이들이 늘어났고 사회의 경제적 규모 자체가 현저하게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비록 완숙하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체제 하에서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정치세력화’가 되었고 이해 및 가치집단을 대변하게 되었지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가치 역시 함께 충돌하게 되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지점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말하느냐고 말이지요. 대다수의 하나님을 모르는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덮어놓고 ‘주님의 뜻’이라고 너무 쉽게 혹은 깊은 생각 없이 말해버리는 교회의 말을 비웃습니다. 그들은 덮어놓고 무작정 내뱉는 답변이 아니라 가치에 기반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을 원합니다. 교회와 기독교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동의되지는 않지만 납득할만한 답변을 원한다는 것이지요.
4.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정치 분야에 대한 생각을 구속하기
정치라는 특정 분야를 보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입장을 내놓는 경우를 극히 드뭅니다. ‘그리스도인됨’이 자신의 사상의 근거인 경우가 드물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진보진영에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인, 보수진영에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많지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진보를 외치고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보수를 외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의 우선순위는 정치적 성향 등과 같은 다른 정체성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고 입장과 방향에 대해 주장할 때 기준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기독교 사상이 그런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무력한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상을 담지하고 있는 교회와 개인이 정치에 대해서 진지하고 바르게 숙고하며 그 영역을 ‘구속’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거나 시도했다 하더라도 유효할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정치 제일선에 나선 정치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삶에 맞닥뜨려오는 정치의 영역에 대해서 구속하고 바른 태도를 견지하고자 하는 진지함을 갖고 있어야만 합니다.
5. 정치에 대한 기독교적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자.
앞으로 적어보려고 하는 글(들)은 한국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또한 정치의 모든 분야에 대한 개념 설명 및 논평 역시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런 것보다는 ‘그리스도인 됨’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정치’에 대해서 취해야 하는 그리고 취할 수 있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또한 바른 자세를 갖기 위해 알아야 하는 개념, 그리고 있었던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 및 교회의 일반적 대응 등에 대해서 개괄적으로나마 알아보려고 합니다. 마침 총선도 다가오고 여러 정치 이슈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기이니만큼 흥미롭게 생각을 나눠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글을 쓰고 읽으며 우리의 세계관 안에 정치라는 분야에 대한 그리스도인다운 이해에 더 근접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