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Passion: 존 파이퍼의 요한계시록 설교 – 짐승과 어린양의 생명책, 어린양의 아름다움

이 글은 존 파이퍼의 2016 Passion 컨퍼런스 메시지입니다.


2016 Passion 컨퍼런스 아틀란타, 조지아 (2016년 1월 3일)

• 존 파이퍼 강연
•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13:1–10
• 주제: 그리스도의 죽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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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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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

번역자를 꿈꾸던 시절 존 파이퍼 목사의 설교를 만나 그의 설교와 더불어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신앙 선배들의 유산을 어느덧 함께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현재 기업의 기술문서를 번역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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