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종교개혁과 관련된 여행을 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지 않을까 생각되는 해입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에서 게시한 1517년으로부터 5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죠. 여기저기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루터와 관련된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고,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루터에 대한 책들이 출간될 예정이기도 합니다.
멜란히톤?
종교개혁하면 곧바로 떠올릴 사람은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칼빈이 언급이 되겠죠. 이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압도적이죠. 관련된 책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멜란히톤과 같은 이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합니다. 한국에도 멜란히톤에 대해 한 챕터 정도를 다룬 책들은 좀 있지만 멜란히톤에게 초점을 맞춘 책들은 별로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는 오늘 소개하는 마르틴 융의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가 우리말로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전기가 아닌가 싶네요.
그렇다면 왜 굳이 멜란히톤에 대해서 알아야 할까요? 저는 종교개혁을 더욱 유익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종교개혁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시대에도 끊임없는 교회 개혁이 필요하며 종교개혁의 역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단순히 루터와 칼빈이라는 영웅적인 극소수의 인물들로 구성된 ‘어벤져스’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더 많은 인물들이 연결되어있고, 시대적인 배경과 문화, 역사적 사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난 것이 종교개혁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고, 저도 거기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루터와 칼빈과 같은 이들이 큰 영향력을 끼친 것에 대해서 인정하지만 말이죠. 아무튼 종교개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여러가지 각도에서 이를 살펴봐야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멜란히톤에 대해 아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멜란히톤은 중요도가 떨어지는 인물이 전혀 아닙니다. 루터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었고, 독일 종교개혁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이미 교수가 되고 언어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루터와 치고 박고 논쟁했던 에크와 붙어서 그로하여금 분노의 술잔을 기울이게 만들었고, 칼빈보다도 먼저 조직신학책 『신학총론(Loci Communes)』를 저술했습니다. 개신교 뿐만이 아니라 구교의 많은 인물들도 멜란히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고, 자기들의 편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죠. 천재과에 속하는…
책 소개
자세한 내용은 역시 책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구요. 책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에 대해서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소개를 한다는 점입니다. 인물 전기를 읽다보면 가끔은 저자가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과도하게 대상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게 오히려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멜란히톤이라는 인물의 장점, 그리고 그의 과오와 약점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호감을 아주 없앨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특히 멜란히톤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과오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궁금하시면 읽어보세요).
20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중요한 사건들과 역사적 배경, 주요 주제들, 주변 관계들에 대해서 짤막하게 여러 챕터로 다루기 때문에 읽기에도 무리가 없습니다. 루터, 에라스무스, 칼빈, 츠빙글리 같은 주요한 인물들과 어떻게 얽히는지를 보는 것이 흥미롭네요. 그리고 멜란히톤에 대해서 더 깊이 알기 위해 어떤 책들을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분량을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도 좋은 장점입니다. 물론 번역된 책들이 많지는 않지만, 더 깊은 연구를 위한 길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유익합니다.
마지막으로 멜란히톤이 우리에게 고민하도록 던져주는 질문 중의 하나는 교회의 일치에 대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는 많은 세월 동안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핵심적인 교리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아디아포라, 즉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부분을 양보하면서라도 가톨릭과의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말이죠. 그리고 이것은 멜란히톤만 노력한 부분도 아닙니다.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서 어떻게 화합하고 교제하며 자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그의 시대에 중요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 시대에도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해볼만한 지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는 같은 신앙고백과 교리를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연합하고 서로를 세우기보다는 분열되고 다투기 쉬운 현실 속에서 그의 노력은 우리에게 ‘한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사에 대한 이해가 얕은 것을 느껴서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 외에도 여러 유익한 책들이 있겠지만, 종교개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책으로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