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한숨만 나옵니다. 얼마 전만해도 이렇게 확인하지는 않았는데, 건강을 생각하면 이제 마스크를 가지고 나가야할지를 고민해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할 거리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늘어갑니다.
마주칠 수밖에 없는 염려와 고통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와 좌절을 맞닥뜨리지 않아본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사회 구조의 악함으로부터 겪는 다양한 고통들, 그리고 질병, 사고, 범죄 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아서 불안해하게 만들고, 우울함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상황에서 염려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수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들은 분명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줍니다. 하지만 만약 성경의 수많은 내용들 중에서 지금 저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내용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저는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는 선언을 꼽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식사기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하는 기도 중의 하나가 바로 주기도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문장에 대한 적용은 수없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 중에 이 기도를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거룩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리킬 때와 하나님 외의 다른 피조물들을 가리킬 때의 의미가 다르겠죠. 다양한 정의를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거룩하시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이 다른 모든 존재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적인 탁월하심과 도덕적인 완전성을 가지심을 말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에게 거룩하다는 말을 할 때에는 그 선택된 특정한 피조물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구별되어서 특별한 관계를 맺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거룩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존재들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나가는 존재이로서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도덕적인 완전하심을 드러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이 왜 우리에게 위로가 될까요? 우리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들보다도 뛰어나신 탁월하신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완벽하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말해줍니다. 또한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보다도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완벽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모두 옳으며 선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거룩하시다고 고백할 때, 자연스럽게 다음의 의미가 포함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탁월한 분이시며,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선하고 옳습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당신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이 일들은 제 지혜로 다 파악할 수는 없으나 당신의 지혜 속에서 선하고 옳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상황을 이끌어가고 계시며, 지금은 고난 중에 있으며 더 악화될 상황들이 염려가 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와 능력 속에서 선하고 옳은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 이렇게 소망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도덕적 완전하심은 심판의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신뢰와 소망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도, 신뢰로 향하는 싸움
물론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선하고 옳아”라고 말하는 것은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말했던 것처럼 상처를 후비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위로와 사랑, 그리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것이겠죠. 하지만 다양한 상황에서 고난의 당사자가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이 비록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의 이유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듣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뵈온 후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고 더 이상 그 이유를 묻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고 경험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을 신뢰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신뢰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그 선하심을 따라 은혜를 베푸실 것을 붙들게 해달라는 고백입니다.
거룩함에 대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나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정의내릴 수 없다. 이와 유사하게, 거룩함의 개념은 일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 잊혀진다. 그럼에도, 거룩함 안에 있는 충만함을 가리킬 수 있는 동등한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의 천사들이나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데, 이는 그 개념이 하나님을 모든 다른 존재들로부터 구별하기 때문이다(출 15:11; 사 6:3; 계 4:8). 거룩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것이다.” [1]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되어 비교할 수 없이 충만하신, 우리의 어떤 말과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없어서 그저 “거룩하시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그분이 염려와 고통 속에 있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소망이자 위로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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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y, M. W. (1996). Holy, Holiness.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lectronic ed., pp. 340–341).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
Comments 1
안녕하세요. 스크리브너 사용법을 찾다가 우연히 들러서 블로그를 보게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진리를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초신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람되지만, 블로그의 글을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도 소프트웨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서 비슷한 성향일 수 있을 텐데, 블로그의 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무슨 내용이고 그래서 무엇이 어떻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본인에 대해서 성경을 가지고 상세히 설명 하셨는데, 이런 자세로 알기쉽게 글을 써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지한 자들을 위해서 알기쉽게 설명하셨을 것이라 봅니다.
신학생이라고 하셔서 신자의 입장에서 몇자 적어봅니다.
마음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