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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른 그 책들: 에딘버러 대학 도서관 전시회 탐방기

학기가 끝나고 도서관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러 간 김에, 중앙 도서관에서 열고 있는 전시전을 방문했습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아서 슬슬 사람이 없더군요.

Library main한국의 대학들도 그런 편이지만 에딘버러 대학도 중앙 도서관 외에 다른 도서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신학부가 위치한 뉴칼리지 도서관에 스페셜 콜렉션으로 보관되어 있는 책들 중 일부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서 중앙도서관에 전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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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많은 책들이 전시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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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이 갈 일이 별로 없는 6층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중앙도서관 1층만 봐도 종교개혁자들의 초상화들이 걸려있지만 사람들은 그리 관심이 없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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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이죠. 도서관에 들어서면 이분들이 왼쪽 구석에 트리 너머에서 도서관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칼빈, 멜란히톤, 츠빙글리, 베자, 부써 등이 있네요. 특이하게도 루터는 안 보이네요. 멜란히톤이 있는데 말이죠.

아무튼 전시회 장에는 아래와 같이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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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주제는 ‘불을 지른 책들’ 또는 ‘선동적인 책들’이 되겠네요. 종교개혁 때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책들을 전시하고 간략하게 해설이 붙어있습니다. 그 책들과 해설들을 소개해볼게요. 사족은 달지 않고 그냥 번역만 해보았습니다. 참고로 괄호 안은 출판 장소와 연도인데, 그 책이 처음 나온 연도라기보단 전시된 책의 출판 연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Reuchlin_Hebrew Lexicon(Basel, 1537)

요한네스 로이힐린 (1455–1522) , 『히브리어 사전, 그리고 히브리어 문법에 관한 주석』 (바젤, 1537)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학자인 로이힐린은 구약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히브리어 어휘와 문법에 관한 이 초기 저작을 출판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회심시키는 첫 발걸음은 그들의 책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맞섰다. 로이힐린은 루터와 같은 이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할 수 있도록 종교개혁을 따르는 학자들을 위한 길을 닦아놓았다.

Erasmus_New Tastament(Basel, 1516)JPG

에라스무스(–1536), 『신약 성경』 (바젤, 1516)
처음으로 인쇄된 그리스도 신약 성경. 단을 나눠서 에라스무스 자신의 그리스어본과 벌게이트 라틴 역본을 실어놓았으며, 이것은 성경 텍스트의 사용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다. 텍스트들을 그들의 원래 언어 안에서 읽으려는 그의 노력은 오늘날의 성경 연구와 설교의 특징을 보여준다.

Desiderius Erasmus_New Tastament(Basel, 1519)

에라스무스(–1536), 『신약 성경』 (바젤, 1519)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의 두번째 판으로,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논쟁적인 라틴 역본으로 라틴 벌게이트역을 교체해버린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의 시작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부분에서 ‘word’를 의미하는 라틴어 Verbum을 ‘dialogue’ 또는 ‘conversation’을 의미하는 라틴어 Sermo로 바꿔서 하나님과의 전혀 다른 관계성을 제안한다. 마르틴 루터는 이것을 사용해서 자신의 초기 신학 작품들을 발전시킨다.

Resolution on the Propositions of the Leipzig Disputation(published Leipzig, 1519)

마르틴 루터(1483–1546), 『라이프치히 논쟁의 진술들에 대한 해명』 (라이프치히, 1519)
이 소책자는 루터가 가톨릭 교리의 수호자인 요한 에크와 연옥, 고해, 자유 의지와 은혜와 같은 것들을 포함하는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한 라이프치히 논쟁의 논증들에 뒤이어 나온 것이다. 루터의 고백들은 이단으로 판결되었고 교황에 의한 공적 교령을 담은 교황의 칙서가 내려지게 만들었는데, 이 칙서는 가톨릭 교회로부터 루터를 제명하겠다는 위협을 답고 있다.

On 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Wittemberg, 1520)

마르틴 루터(1483–1546), 『교회의 바빌론 유수에 관하여』 (비텐베르크, 1520)
이 책에서 루터는 교회의 일곱 성례(영적 변화의 외적 표징들로 간주되는 핵심적인 종교 의식들로 결혼 등이 이에 속함)에 관한 과감한 결론을 내린다. 그의 성경 연구에 기초해서 루터는 성례의 개수를 줄이고, 교황의 권위를 공격하여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정죄한다. 이것은 에라스무스로 하여금 루터의 개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만든다.

Against Henry, King of England(Wittmberg, 1522)

마르틴 루터(1483–1546), 『잉글랜드 왕 헨리에게 반대함』 (비텐베르크, 1522)
이 소책자에서 루터는 헨리 8세가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교황을 지지한 것을 비난한다. 루터는 헨리가 1521년에 쓴 책 『일곱 성례에 대한 단언』이라는 책에 직접적으로 반응해서 이 책을 썼다. 헨리는 자신의 책 『일곱 성례에 대한 단언』에서 루터가 1520년 쓴 팜플렛 『교회의 바빌론 유수에 관하여』에 나오는 면벌부와 교황직에 대한 견해를 공격한다.

Hieronymus Emser_The New Testament(Augsburg, 1529)

히에로니무스 엠제르(1477–1527), 『신약 성경』 (아우구스부르크, 1529)
루터의 독일어 성경의 일방적인 성공은 그의 적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그들은 루터의 전 스승이었던 히에로니무스 엠제르(Hieronymus Emser)를 시켜서 루터에 반대되는 이 판본을 만들게 했다. 이 성경은 루터의 출판본에 기초하며, 엠제르는 자신이 루터의 본문이나 신학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고친다. 인쇄된 노트는 동의하지 못하는 그 부분들의 일부를 설명해준다. 이 사본은 16세기 독자에 의한 열정적인 라틴어 주석이 담겨있다.

Luther_The Bible(Wittemberg, 1565

마르틴 루터(1483–1546), 『성경』 (비텐베르크, 1565)
모든 독일인들이 성경을 자신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한 성경 전체를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의 성경의 완성본으로, 성경 원어로부터 권위있는 번역이 이루어졌다.

The Bible(Geneva, 1561)_

『제네바 성경』 (제네바, 1561)
이 성경은 가톨릭을 따르는 메리의 통치 기간에 잉글랜드에서 도망친 개신교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성경의 친-독자적인 판본은 종교개혁 시대에 가장 널리 읽힌 영어 성경이었다. 이것은 스코틀랜드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아메리카로 떠난 청교도들(the Pilgrim Fathers)에 의해 아메리카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같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다.

Tyndale_Erasmus_Burnt NT_Luke22(London, 1548)

틴들(1494–1536)과 에라스무스(–1536)의 성경의 불탄 조각
누가복음 22장이 담긴 이 조각은 에라스무스의 라틴역본과 윌리엄 틴들의 영문역본을 담고 있다. 이것은 성경들과 그것들을 갖고 있던 이들이 책과 신앙이 국가 안보의 문제이기도 했던 이 시기에 불 속에서 사그러졌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이 불탄 성경 조각은 이 성경들이 얼마나 귀중하게 여겨졌었는지를 보여준다.
Over de auteur

재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17세기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의 교회론을 연구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의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많다.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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