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복음서를 무엇이라 하느냐 – 마크 스트라우스의 『네 편의 초상, 한 분의 예수』 서평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5)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영원을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묘사하는 예수님이 진짜 예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른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따라서 구원은 없습니다. 기독교의 세계화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이라도) 들어왔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그분을 묘사했습니다. 페루 출신의 화가인 보리스 바예흐(Boris Vallejo)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울퉁불퉁한 근육과 식스팩이 있는 인물로 묘사했습니다.[1] 『마음의 소리』라는 웹툰을 그리는 조석 작가는 약간 바보스러운 동네 형처럼 그렸지요.[2]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X(본명 말콤 리틀Malcolm Little)는 “그리스도는 백인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흑인이었다”라고[3] 말했지요.

철학자요 종교학자인 도올 김용옥은 예수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평범한 ‘나’와 같이 생로병사를 거치는 역사 속의 한 인간일 뿐이다. 나사렛에서 태어나고(베들레헴 탄생설화는 후대의 첨가) 성장하고, 당대 팔레스타인 민중과 더불어 기존의 질서와 상충되는 운동을 전개했고, 예루살렘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아 십자가형에 처해짐으로써 생애를 마감한 그 어떤 인간”이라고요[4]. 그래서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그를 현자, 혹은 사회 운동가, 또는 ‘4대 성인’ 중 하나 등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자세히 그 내용들을 뜯어보면, 대체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이 생각하는 착하고 괜찮은 사람과 비슷한 분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를 그분과의 관계로 이끌지 못합니다. 사료적/역사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그분의 제자들이 증언한 기록으로 가야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진정으로, 믿을만하게 답하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또한 답해야 합니다. “너희는 복음서를 무엇이라 하느냐?”

복음서 이해를 위한 탁월한 입문서

마크 스트라우스는 베델 대학교(과거 존 파이퍼가 신약학 교수로 있었던 바로 학교입니다. 다만 파이퍼는 미네소타 캠퍼스였고, 스트라우스는 샌디에고에 있는 캠퍼스죠)의 신약학 교수로서, 1993년부터 신약학, 특히 복음서를 가르쳐 왔습니다. 이후 중량감 있는 마가복음 주석(ZECNT 시리즈와 EBC)을 두 권 썼고, 누가복음의 간단한 주석을 쓰기도 했지요. 게다가 성경번역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라서, NIV의 번역위원인 동시에 두 권의 묵직한 성경 번역 관련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5]

그는 오랫동안 학교에서 복음서를 가르쳐 오면서 학생들에게 복음서를 알 수 있는 입문용 서적을 썼고, 2007년 출간 이래로 『네 편의 초상, 한 분의 예수』는 베스트셀러로, 또한 신학생들과 관심 있는 교회 리더들에게 복음서와 복음서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안내해 주는 입문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물론 입문서라고는 하지만 신학생뿐 아니라 목회자들, 그리고 전문적 학자들까지 만족시키는 꽉 찬 내용으로 사랑받았지요. 이 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책은 신약 시대의 이스라엘과 그레코/로만 사회의 방대한 배경지식을 사용하여 1세기의 복음서를 조명해 냅니다.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들이 다양한 사진자료들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제시되고, 랍비전승과 요세푸스를 비롯한 1세기 유대문헌을 사용한 본문 이해를 시도하지요. 또한 각 복음서(특히 요한복음은 정말 좋습니다)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사상적 배경도 말해주고 있지요.

둘째, 이러한 배경이해 가운데서 복음서의 개략적인 내용과 흐름을 선명하게 이해시킵니다. 3부 사복음서는 각 복음서의 내용을 살피고, 구조와 그 안의 신학까지도 조명해 냅니다. 특히 구조를 설명할 때는 여러 다른 복음서 연구가들과 대화하면서, 복음서 본문을 보는 다채로운 시각 역시 알려줌으로 복음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지요. 신학적 이해나 배경을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이 3부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셋째, 복음서 전체의 형성사와 비평이론 역시 공정하고 명료하게 소개합니다. 현대 성경신학계의 비평이론들은 굳이 그것을 따르지 않더라도 필수적을 알아야 하는 지식이 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비평이론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소개하거나, 또는 비평 이론 자체를 비판하거나 반박함으로 복음서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몇몇 비평 이론들은 복음서의 구조와 신학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통찰을 주기 때문에 알아두면 좋지요. 스트라우스는 보수적인 복음주의자의 입장을 철저하게 견지하면서, 이러한 접근법들을 때로는 비평하고 사용하며 복음서를 해설해 나가지요. 따라서 이 책은 복음서의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향후 더 전문적인 복음서 연구서를 읽기 위해서 읽어둘 입문서이기도 합니다. 전문적 복음서 연구물이 쓰는 전문용어들을 이 책 한 권으로 다 배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넷째, 4부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바탕으로 하여 복음서가 말하는 역사 속 예수를 설명해 줍니다. 특히 초반에는 이러한 역사 속 예수를 연구하는 주요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고 비평하는데(특히 642페이지의 표는 유용합니다), 그는 복음서가 신학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동시에 역사적 문서임을 강조하며(p. 686) “훌륭한 역사는 훌륭한 신학”이라고 말해주지요.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연구한 역사적 예수 연구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복음서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지요. 그분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사역과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는지 말해줍니다. 여기에는 복음서를 설명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복음서를 변증하는 내용 역시 풍부합니다. 특히 20장인 『예수의 부활』 부분은 부활에 대한 짧지만 효과적인 변증이 들어있지요.

복음서 연구를 통해 복음을 듣다

복음서에 대한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자면, 마크 스트라우스는 복음서를 무엇이라 말하는 것일까요? 그는 말합니다. “예수에 관한 기본 사실들을 성경의 다른 자료와 성경 밖의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역사 속 예수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서 모아야 한다. 그러한 자료는 대체로 신뢰할 수 있다.”(p. 66).

즉, (학자의 신중한 표현을 걷어내고) 스트라우스의 의견을 말하자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보를 복음서에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복음서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최우선의, 가장 올바른, 최고 권위의 묘사인 것이지요. 그러한 전제를 가지고 복음서를 연구하게 되면 역사적 예수에 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요, 하나님을 대리하여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는 이라고 주장하셨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이사야와 다른 예언자들이 주장한 회복 신학이라는 렌즈로 바라보셨다. 즉, 당신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제사요, 새 출애굽을 이루고 새 언약을 세워 참된 죄 용서와 하나님을 친밀히 아는 지식을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여기셨다. 나아가 증거는 예수가 무덤 안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셋째 날에 살아나셨음을 일러 주는데, 이는 야웨가 보내신 메시아요 하나님을 대리하여 이스라엘과 세상을 구원할 자라는 예수의 주장을 확증해 준다 (pp. 912–913)

이것이 바로 스트라우스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답을 주의 깊게 봅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중심이 된 이 답은 결국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탁월성이 가장 빛나는 지점입니다. 수많은 복음서 연구서들이 있지만, (심지어 아주 보수적인 연구서라도) 무모한 논쟁과 학설에 파묻혀 복음 자체를 드러내지 못하는데 반해, 이 책은 복음서 연구를 통해 복음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이야말로 복음서 연구서가 가져야 하는 최고의 미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반응을 요구합니다. 그분을 메시아와 주로, 구속자와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지, 아니면 도올이나 조석 작가나 말콤 X가 묘사하는 방식으로 대할 것인지 말이지요. 그래서 스트라우스는 이렇게 책을 끝맺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요구하는 이 부름에 응답했으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복음에서 발견했다.” (p. 913)


  1. http://laughingbone.blogspot.co.uk/2005/05/boris-vallejos-depiction-of-agony-of.html ↩

  2. 예를 들면,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0853&no=567&weekday=tue 을 보라.  ↩

  3. Kelly Brown douglas, The black Christ, (NY, Maryknoll: Orbis, 1994), 1.에서 재인용.  ↩

  4. 도올 김용옥,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 (서울: 통나무, 2008)  ↩

  5. How to Choose a Translation for All Its Worth: A Guide to Understanding and Using Bible Versions와 Challenge of Bible Translation.  ↩

Over de auteur

정규

진짜배기 잉여 필자. 다른 필진들과는 다르게 공식적인 '저자'다. 담임 목회자이자 두 딸의 아버지. 잉여롭고 싶은데 찾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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