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회심의 재해석

기독교에 적대적이던 사람이 놀라운 사건을 겪고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나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회심입니다. 그 외에도 극적인 회심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노예 상인이었던 존 뉴턴의 회심과 그가 지은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도 유명하고, 순회 설교자에게 돌을 던지려고 부흥집회에 갔다가 회심하게 된 불량배 이야기도 있습니다.

혹시 이런 회심 이야기가 부러우신 분들이 계신가요? 예를 들어 소위 모태신앙(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이셔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닌 사람들)인 사람들의 불평을 들어보면 이런 회심에 대한 부러움이 섞여있곤 합니다. “아, 나도 저렇게 극적으로 은혜를 받아서 회심하게 되면 저렇게 열렬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죠. 네, 이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하곤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 교회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회개한 죄인’의 대표격인 사람을 꼽으라면 아우구스티누스(또는 어거스틴)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어디선가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톨레 레게)’라고 울려퍼지는 신비로운 노래를 듣고 성경을 펴서 로마서 말씀을 읽고 즉시로 회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회심 이야기가 서술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전적인 책 ‘고백록’은 대표적인 고전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을 둘러싼 논란이 19세기부터 뜨겁게 대두되었습니다. 그의 회심 이야기가 과연 역사적으로 사실이냐 아니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학자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왜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일까요?

사실 이런 주장에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그가 회심한지 10년은 지나서 쓰게 된 책입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한 직후부터 많은 책들을 저술하는데, 그의 초기 저술들과 고백록의 회심 이야기를 비교해보면 중대한 차이점들이 발견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고백록에서 회심과 관련하여 인간 의지의 전적인 무능력을 말하고 있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초기 저술에서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초기 저술 중 하나인 ‘행복한 삶’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회심의 여정을 짧게 언급하는데, 밀라노 정원에서의 유명한 회심 사건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초기 저술들에서는 그리스도를 죄인에서 구원하는 중보자이신 신인(神人)으로 보기보다는 참된 지혜자, 또는 하나님의 지혜 그 자체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플라톤 철학의 영향과 당시 소위 교양있는 기독교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브라이언 도벨이라는 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회심 후 10년 뒤에야 나타난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초기 저술은 좀 더 플라톤주의적인 경향이 많이 보인다고 학자들은 지적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고백록이 플라톤주의적인 경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지만요. 게다가 자신의 회심이야기를 다루며 설명으로 곁들이는 철학적인 개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초기 저술에는 아직 고민 중이거나 미성숙하고 충분히 발전되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차이점은 더 있습니다. 그의 ‘독백록’과 같은 책들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진리를 초월적으로 직관(contemplation)하는 소위 플라톤적 상승(Platonic ascent)이라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향을 준 플로티누스 같은 철학자들이 이런 것을 추구했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을 고백록 7권에서 살펴볼 수 있죠. 그런데 고백록 9권, 즉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한 직후의 내용을 보면 그와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오스티아라는 곳에서 플라톤적 상승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신비한 체험을 한 것이 언급됩니다. 이 체험은 플라톤적 상승과는 좀 다른,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을 경험하는 종류의 상승(ascent)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언급하는 것은 초기 저술들에서는 나오지 않으며, 그가 회심한지 10년 뒤에야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스티아에서의 체험은 그의 회심 이후 얼마되지 않아 일어난 사건입니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했을 때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떻게 중보자를 의지하는 신비적인 체험을 했던 것일까요?

이러한 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보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19세기의 학자 아돌프 하르낙은 고백록의 회심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원리들을 설명하기 위해 구성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많은 학자들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측면에서 고백록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인했습니다.[1] 그렇다면 우리도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이야기를 그렇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는 것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회심 이후에 자신의 회심을 과시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고백록 9.2.3). 일부러 자신의 회심 이야기의 극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게다가 그는 하나님께서는 거짓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 라고 말합니다(고백록 10.40.66). 아우구스티누스의 ‘거짓말에 관하여’라는 글을 보면, 그에게 있어서 거짓말이란 자기가 참이라고 믿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거짓이라고 믿는 것을 참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상대방이 속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어떤 것을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 아닌 이상, 최소한 그가 회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맞다고 믿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초기 저술들은 왜 위에 언급한 차이점들을 보이는 것일까요?

브라이언 도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그의 회심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은 회심 이후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발전들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피터 브라운도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 직후 고백록을 썼으면 전혀 다른 종류의 회심 이야기가 쓰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진 테셀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발전하면서, 이전에는 사소해 보였던 일들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회심 이야기를 진실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회심했을 때 이해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성경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자신의 회심을 새롭게 재해석한 내용을 고백록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죠. 회심 직후 아우구스티누스는 최소한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회심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회심 이후에도 떨쳐내기 힘든 죄의 습관들과 싸우면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믿게 만드는 의지의 원동력조차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죄인인 자신을 구원하시는 중보자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죠. 신앙이 성숙해지고 신학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회심 이야기는 처음 이해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도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오스티아에서의 신비한 체험 이야기를 이런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열쇠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성례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성례, 즉 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본인이 자각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만드는 방편이라는 것이죠. 회심 이후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인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제대로 깨닫지는 못했었지만 그 시기에 이미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스티아에서의 경험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것이죠. 즉 이 경험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찬을 참여하기 시작한 것을 통해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스티아에서의 신비한 경험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는 계속 플라톤적 상승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오스티아에서의 경험이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직관하는 플라톤적 상승보다는 열등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한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면서, 플라톤적 상승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되고, 그리스도를 의지했던 그 오스티아에서의 경험에 대해서도 새롭게 재해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찬에 대한 이런 신학적 견해나 신비 체험에 대한 내용들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신학적 견해에 따른 아우구스티누스의 재해석에 대한 도벨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이야기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그가 밀라노 정원에서 신비한 노래 소리를 듣고 성경 말씀을 통해 회심하게 된 것은 신비한 체험과 엄청난 은혜를 경험하고 전적으로 변화되는 회심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런 것을 피하려고 회심 직후에는 밀라노 정원의 사건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회심 이야기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와 무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줍니다. 심지어 이런 것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 사건을 통해 단번에 깨달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신앙이 성숙해졌을 때에야 자신의 회심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백록을 읽으면서 강력한 은혜 체험 한방(?)으로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의도와는 좀 다르게 그의 회심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회심 이후의 내용인 고백록 10권을 읽어보게 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종종 은혜를 사모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 간증 집회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집회에 유익한 면이 있긴 하죠. 사실 고백록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을 갈망하게 된 동기 중 하나가 다른 그리스도인의 회심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초기 저술들의 차이점은 회심 간증을 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아직 미성숙할 때에는 신앙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모르기 때문이고, 또는 그리스도인의 회심에 있어서 사소한 것을 강조하거나 진짜 중요한 것을 무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그랬듯이 말이죠.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순간의 강렬한 은혜 체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나님을 알아가고 신앙이 성숙해가길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이미 보았듯이 그의 회심 이야기의 포인트는 강력한 신비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필요성이며, 이 포인트는 그가 신앙이 성숙했을 때에야 깨달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열매를 맺고 성숙해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드러나시는지를 말하는 것이 덕이 되는 이유는 그가 신앙의 깊은 본질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디모데전서 3:6에서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가르치면서 갓 회심한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경계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세상에서 유명한 이들을 초청하고 간증을 듣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앙의 성숙과 회심의 열매가 없는 이의 간증은 잘못하면 어떤 신비한 체험만을 갈망하게 만들거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거나 심지어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을 신앙의 핵심인 것처럼 강조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명한 이들을 초청해서 간증을 듣기보다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가 신앙이 성숙해지고 열매를 맺어나가는 가운데 그동안 사소한 것으로 우리 삶의 모습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셨는지를 점점 더 이해하고 그것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요. 고백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고백록을 포함한 그의 책들 속에서 나타나는 사상의 발전과 신학의 성숙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줍니다. 지금은 다 알지 못할지라도, 5년, 10년, 혹은 20년 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게 된다면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 놀랍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의 기쁨 아닐까요?

참고문헌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성염 역 (분도출판사, 2016).

___________, 『독백』, 성염 역 (분도출판사, 2018).

___________, 『행복한 삶』, 성염 역 (분도출판사, 2016).

___________, On Lying, In A Select Library of the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 ed. by Schaff, Philip (Buffalo, NY: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7); 한글 번역은 다음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nfinj/66

헨리 채드윅,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뿌리와이파리, 2016).

피터 브라운, 『아우구스티누스』 (새물결, 2012).

Brian Dobell, Augustine’s Intellectual Conversion: The Journey from Platonism to Christian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Paula Fredriksen, ‘Paul and Augustine: Narratives, Orthodox Traditions and the Retrospective Self’, JTS 37 (1986), 3–34.

Colin Starnes, Augustine’s Conversion: A Guide to the Argument of Confessions I-IX (Ontario: Wilfrid Laurier University Press, 1990).

Eugene Teselle, Augustine the Theologian (Oregon: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2).


  1. 물론 이에 반대해서 역사성이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콜린 스타네스(Colin Starnes)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이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의 역사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는 구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위의 참고문헌 참조.  ↩

Over de auteur

재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17세기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의 교회론을 연구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의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많다.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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