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는 전쟁?
트리니티 박사 학위에 합격한 후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무겁기만 하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석사를 마치지 못한 것도 한몫했고, 주님 은혜로 박사에 합격하긴 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멀어보였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입학 위원회에 포함되어 있으셨던 밴후저 교수님이 제 상담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감사 답장을 썼습니다. “당연히 이미 아시겠지만 합격했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그랬어요. “이제 앞으로 올 전투(battle)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경작하고 수확하는
그리고 밴후저 교수님께 답장이 왔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Yes, I think you can use the time to prepare for your PhD program, though I would use agricultural rather than military metaphors in thinking about it. Think of yourself as a farmer who gets to plough an academic field, raise a crop, and hopefully reap a harvest for the church. So how do you spend your spring and summer in the field?
그래. 내 생각에 이 시간을 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데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데 나라면 군사적 비유보다는 농부의 비유를 쓰겠네. 자네 스스로를 학문이라는 밭을 갈고 작물을 키우는, 그리고 바라기는 교회를 위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농부라고 생각하게. 그러면 이제 이번 봄과 여름을 이 밭에서 어떻게 쓰려나?
별 것 아닙니다. 그런데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생각의 전환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네요. 그리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전 언제나 전쟁으로서의 공부엔 잼병이었거든요. 하지만 밭은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왔기에 지금까지 버텼던 것 같고요. 스스로 농부라고 생각하고 작물을 키울 생각을 하니, 열매를 보기 위해 서서히 키워가야 할 것들과 그것들을 키울 때 필요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숨가쁘게 싸워야 한다는 부담이 답답하게 할 때는 작은 행동의 소중함을 잊는 적이 많았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그 작은 한 걸음을 소홀히 함으로 오히려 큰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 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한 적이 참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학문도 목회도
학문도 이런데 목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목양하는 용어를 사용하셔서 교회를 돌보라고 하셨죠. 삶이 지나치게 팍팍해진 나머지 공부도 목회도 개인 신앙 생활도 전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허수아비와 싸우면서 말입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령을 통하여 놀랍게 심기워지기를 고대하며 부지런히 물 뿌리고 씨 심는 농부일 겁니다. 그렇게 죽었던 그가 드디어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이 되면 목자로서 그들이 곁길로 나가지 않도록 도우며 진짜 목자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겠지요. 신학도 – 큰 그림에서는 이런 교회의 사명을 도와야겠지만 – 작은 그림으로는 목회와 동일하게 농부처럼 사랑으로 지식과 지혜를 키워 교회를 위한 열매를 맺어 수확하기를 꿈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병사이자 농부
물론 요한계시록은 역사 가운데 위치한 교회 자체를 전투하는 교회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싸우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잘 준비된 군사가 될 것을 종용하죠. 여전히 우리는 병사들입니다. 하지만 이 싸움의 성격이 무엇인지 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신학이든 목회든 우리는 싸우는 사람들이지만 우리 싸움의 성격은 총탄이 오가는 좁은 의미의 전투와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 싸움은 우주적이며 긴 시간을 요하는 싸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싸움은 영혼을 살리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리고 영혼은 코인 넣으면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로보트가 아니라 계속 보살펴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병사들이긴 하지만 어쩌면 농부에 가까운 싸움을 하는 자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의 규칙과 성격을 잘 파악해야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Jesus the Victor)을 높이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