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본문
이 본문은 세 가지 이유로 독특하다
첫째, 이는 예수님이 나눈 가장 긴 대화다. 제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둘째, 이 이야기의 위치 때문에 중요하다. 예수님이 밤 늦게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눈 이야기 바로 뒤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 니고데모와 우물 가의 여인, 두 사람 사이에 대조를 느낄 수 있다. 3장에서는 남자, 이름이 알려진, 종교적인, 도덕적인, 영향력 있는 남자이지만 4장에서는 여자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신다. 대화의 중심은 그녀의 부도덕한 과거 삶이다. 3장과 4장을 통해 요한은 위와 안(니고데모), 아래와 바깥(사마리아 여인)을 향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리고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곳도 없다.
셋째, 복음의 핵심을 전파해준다. 이 대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요20:30-31에서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을 발견한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여인을 만나러 간 예수님
요한은 먼저 배경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유대 지역을 떠나 갈릴리로 가신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모두 가버린다는 제자들의 불평에 대해 자신은 신부가 아니며 자신은 쇠하여야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대답한다. 이 전에 바리새인들과 정결규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있었던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셨다. 그리고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셨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해 이 길을 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시고 그곳을 통과하신다.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우물 곁에 앉으실 때 여섯 시 쯤이었다. 이 우물 가에 있으실 때 예수님은 지쳤고 목마른 상태였다. 우리는 여기서 히브리서가 말하는 대로 우리의 연약함을 온전히 체휼하신 대제사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대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7~15절: 생명의 물
16~26절: 참된 예배
첫 부분: 생명의 물
보통 여인들이 물을 뜨긴 했지만 이 정오 시간에 물을 뜨러 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여기서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 자리에 예수님이 있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 요한은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기 위해서 어떤 장벽도 넘어가기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10절에서 예수님은 그녀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대답하신다. 물에 관한 평범한 대화였으나 예수님은 이를 ‘생수’ 대화로 더 깊이 이끄신다. 이 물은 야곱의 우물이 제공할 수 있는 물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었다. 이 물은 영생을 주는 물이다. 구원은 일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로 얻는 것이다. 구원은 구하는 자에게 거저 주어진다.
렘2:12-13
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사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예수님은 이런 문제를 가진 자가 구할 때 그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야곱의 우물이 주는 물은 다시 목을 마르게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내적(internal)일 뿐 아니라 외적(external, 영원)이다. 영원한 샘물을 약속하신 후 예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두 번째 부분: 예배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앞 부분에서 생수를 제공하신 후 이제는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새로운 좋은 소식(good news)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말해주는 안 좋은 소식(bad news)을 먼저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수님은 이어지는 부분에서 이 여인의 삶 중심에 있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신다. 그녀는 물을 가두지 못한 터진 웅덩이를 통해 만족하고자 했다.
여인은 이어 발견하게 된다. 이 여인 앞에서 대화를 나누시는 이 분은 ‘선지자로소이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말하는’ 분이시다. 지치고 목마르신 이 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신18:18은 장차 올 선지자에 대해 말한다. 예수님은 바로 약속 된 선지자, 메시야이시다.
여인은 어디서 예배해야하는지 묻는다.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예배하는 특정 장소는 옛 것이 될 것이다. 예배는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느냐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원할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지금도 찾고 계신다.
24절은 하나님이 영이시라 말한다. 하나님의 본질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식에 장소에 묶이실 수 없다. 하나님은 오직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할 분이다.
예수님은 모두가 오래도록 기다렸던 메시야이시다. 네가 찾고 있던 그가 바로 네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나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며 좋은 목자이시다. 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이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 수 있는 자는 없다. 예수님은 참된 포도나무 가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 만약 7번의 I am이 부족하다면 8:48을 보라. 그분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으신 분이셨다. 시간과 공간의 시작이었으며 하늘과 땅의 교차점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올라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내려오실 수 있는 통로가 되신다. 이 부도덕한 여인을 만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위대한 자비를 알자.
27절에서 제자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놀라워했다. 영문을 모르던 제자들이 돌아오던 때에 기쁨에 가득 차 여인은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인은 물동이를 거기 내버려 두었다. 영문을 모르는 제자들과 증언하는 여인… 이들 사이의 긴장을 느끼시라.
와서 이 사람을 보라! 이 복음은 전파되어야 한다. 이 말씀을 기억하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이 여인의 증거 때문이었다. 그리고 들은 이들은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다른 누군가의 증거로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당신이 거듭나야 하며 당신이 믿어야 한다.
출애굽 당시 열 번째 재앙 때 죽음이 지나가며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여나갈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다. 그때 한 가정을 위해 주어진 것은 양 한 마리였다. 대속죄일에 주어진 것은 언 이스라엘을 위한 양 한 마리였다. 그리고 드디어 양 한 마리,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위해 주어졌다. 요한은 마지막 때의 양을 보고 외쳤다. 그는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는 어린 양이시다! 예수님이야말로 세상의 구세주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