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더러 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청파교회를 담임하시는 김기석 목사님은 어느 설교에서 단어 ‘생명’의 뜻을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生 살 생

命 명령 명

“생명은 살라는 명령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에게 살도록 명령하셨어요. 그럼, 그저 잘 먹고 잘 살면 될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살라하신 명령에는 뭔가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셨지요 (마 4:4, 현대인). 여기서 빵은 물론 진짜 빵일 겁니다. 허나, 동시에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령, 음식은 물론이고, 당신이 입는 옷, 살고 있는 집, 벌고 쓰는 돈, 들고 있는 스마트폰까지 모두 이 빵 안에 포함됩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제유적 빵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봐요.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다”라는 말씀의 컨택스트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게 우리에게는 전혀 시험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돌로 빵을 만들어 봐.”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브라카타브라?” 이럴 순 없잖아요. 적어도 무언가 당신에게 ‘시험’이 되려면, 그것을 충분히 행하고도 남을 ‘능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을 빵으로 만들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네요. 예수님은? 예수님은 돌로 빵을 만드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몇 명을 먹이셨는지, 얼마나 남기셨는지 잘 압니다 (마 14:21, 막 6:44, 눅 9:14, 요 6:10). 말인즉슨, 예수님에게는 사탄의 요구가 충분히 시험이 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살려면 먹어야 하잖아요. 우리더러 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빵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시니 말입니다. 우리는 사실 제유적 빵, 즉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 그것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지 더 궁금해집니다.

하나님은 빵 없이도 섬길만한 분이신가?

잠깐,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 봅시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의도가 뭘까요?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는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을 뒤집어보면, 사탄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빵을 위해 사는 거야. 아니야?” 사탄은 우리가 자기 배불리기 위해 사는 존재라고 평가 절하한 것이지요.

사탄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규정한 것이 욥기에도 등장해요. 욥기 첫 장을 보면, 욥을 놓고 하나님과 사탄의 주장이 갈립니다. 쟁점은 “왜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이에요. 사탄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데는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욥 1:9, 현대인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뭘까요? 사탄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제시합니다.

“주께서는 항상 그와 그 가정과 그의 재산을 보호하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축복해 주셔서 그의 가축이 온 땅을 덮을 만큼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한번 빼앗아 보십시오. 그러면 당장 그가 정면으로 주를 저주할 것입니다.”

욥 1:10-11, 현대인

오늘의 주제인 빵으로 표현하자면, 욥이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이유는 하나님이 빵을 넘치도록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사탄의 말대로라면, 만약 하나님이 욥의 빵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된답니까? “욥은 당장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다!” 이것이 사탄의 주장입니다.

반면, 하나님은 사탄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십니다. 즉, “빵이 이유라고? 놉! 욥은 빵이 없어도 나를 경외할 거야.” 놀랍게도 하나님은 보상이 없어도 욥은 자신을 섬길 것이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니까 욥기는, 박영선 목사님이 표현을 따라, “하나님은 이유가 없어도 섬길만한 분이신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빵이 없이도 섬길만한 분이신가?”입니다.

물론입니다. 비록 사탄은 사람이 빵 없이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존재라고 일관되게 주장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빵이 없어도 섬길만한 분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탄의 주장이 옳다 증명하는 삶을 살아선 안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사탄은 틀렸고, 하나님은 맞다 외치는 삶을 살아내야만 하지요. 그럼 어떻게 살란 말인가요? 그건 하나님께 물어야지요. 살라고 명령하셨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다시, 예수님의 시험 장면으로 돌아옵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한다 제안하실까요?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마 4:4, 현대인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대요. 우리는 빵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즉, 여기서만큼은 예수님이 말씀을 청각이 아닌 미각으로, 듣는 것이 아닌 먹는 것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본래 우리는 빵을 먹고, 살 힘을 얻어요.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님은 우리가 말씀을 씹고, 맛보고, 삼키고, 소화하고, 포만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우리 몸의 에너지를 삼아 생명을 유지하라 하시는 겁니다.

대체 말씀을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적어도 말씀이 진짜 빵은 아닐 거잖아요.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경험하여 빵에 꽂힌 사람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 6:41, 현대인

오호라, 예수님이 말씀의 빵이셨군요. 곧,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다는 뜻이겠군요. 그럼, 예수님을 먹는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요?

“사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요 6:40, 현대인

예수님을 먹는다는 건, 곧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진정 “나는 예수님을 믿어요.” 고백하는 것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으로 사나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고 삽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제유적 빵만을 쫓으며 살 때, 천국에 속한 우리는 말씀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삽니다. 다시 말해, 하박국과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합 2:4, 롬 1:17, 갈 3:11).

우리는 가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신의 빵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만날지 모릅니다. 마치 예수님이 충분한 능력이 있으셨음에도 돌로 빵을 만들지 않으신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빵 없이도 섬길만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을 통해 우리더러 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뜻, 즉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으로 참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Over de auteur

기수

김기수 목사는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석사(MAR) 과정으로 성경 신학을 배우고 있다. 그는 개혁신학에 뿌리를 둔 성경 신학을 공부하고, 후에 기독교 윤리학을 공부할 계획에 있다. 그는 아내 지은과 딸 로윤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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