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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 사사기 3:18-26을 중심으로

본문의 핵심점(PIVOTAL POINT)은 무엇일까?

강영안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 연동하는 과정입니다(강영안, 『읽는다는 것』, 98.). 기능적인 측면으로는 눈이 텍스트를 판독합니다. 의미론적인 측면에서는 마음이 그 텍스트를 해석합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판독과 해석을 거친 텍스트는 우리의 삶에 현상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과 그리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바로 ‘읽기’입니다.

읽기를 마친 저는 언제나 같은 문제를 직면합니다. “뭣이 중헌디?” 이는 성경 텍스트를 읽을 때, 언제나 저를 괴롭혔던 문제입니다. 눈이 텍스트를 판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텍스트가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점 (pivotal point)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뭣이 중헌디?”는 비단 저만의 고민은 아닐 겁니다. 분명 당신의 문제이기도 할 겁니다. 당신은 분명 눈으로 성경을 읽고, 머리로 내용을 이해했지만, 정작 이 본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눈은 자연스레 본문을 떠나 그럴싸한 이야기를 찾게 됩니다. 사사 에훗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볼까요. 지나친 상상력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곡해를 낳습니다. 가령, 에훗이 왼손잡이였다는 이유로 그를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영웅으로 본다거나(물론, 시락서(Sirach)나 탈굼(Targum)에 장애에 대한 견해가 있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이 비대했다는 것으로 그가 이상 성애자였다 하여 에훗과 성관계를 원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요 (Guest, Queer Bible Commentary: Judge, 172.). 그러나 이것은 본문의 의도를 벗어난 지나친 해석입니다.

히브리어 완료형 동사 (QATAL)

오늘 저는 “뭣이 중헌디?”에 대한 대답을 줄 좋은 방법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히브리어 성경의 ‘완료형 동사’(qatal)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구약 성경은 내러티브를 설명할 때, 접속사를 포함하는 ‘미완료형 동사 (wayyiqtol)’를 반복하는 구조를 갖습니다. 그러다가 저자가 ‘절정의 순간’(climactic/pivotal events)을 만들고 싶을 때, ‘완료형 동사’(qatal)를 사용합니다(Bergen, Biblical Hebrew and Discourse Linguistics, 71.). 쉽게 말해, 이 방법은 우리가 성경의 내러티브를 읽을 때, 저자가 매우 중요하다고 쳐놓은 별표를 보는 것입니다.

사사기 3:18-26에 등장하는 에훗의 내러티브는 훌륭한 예입니다. (본문을 읽고 오시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먼저, 여러분은 본문의 범위를 18-26절까지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메크로신텍틱 마크’(Macrosyntactic Marks)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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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electronic ed. (Stuttgart: German Bible Society, 2003), 삿 3:18-27

‘봐예히(וַֽיְהִי֙)’ (27 ,18절)는 시간성(temporal)을 나타내는 메크로신텍틱 마크입니다. 그러니까 18절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26절에서 마무리되고, 27절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8-26절 하나의 이야기 단위로 구별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삿 3:18-26에서 ‘뭣이 중헌지’ 봅시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자는 내러티브의 정점이 되는 부분을 완료형 동사를 통해 독자들을 주목시킨다고 했지요. 그럼, 본문에 등장하는 ‘완료형 동사’(qatal)를 모두 찾아봅시다.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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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electronic ed. (Stuttgart: German Bible Society, 2003), 삿 3:18-26

위 7가지 동사에 해당 부분들에 대한 개역개정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8절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아주 급하게)”

19절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우상, idols)에서부터 돌아와서

20절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21절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24절 “에훗이 나간 후에 (즉시)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26절 “돌 뜨는 곳(우상, idols)을 지나

개역개정, 삿 3:18-26

지금 보시는 이 부분이 바로 저자가 매우 강하게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가능하다면, 성경을 펼쳐 해당 부분에 형광펜으로 칠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사기 3:18-26 속 저자의 핵심 의도

이제, 삿 3:18-26의 내러티브에 등장하는 저자의 핵심 의도를 파악해 봅시다. 18절에 에훗은 (마치 공물 바치는 것은 자기가 여기 온 원래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이) 아주 급하게 공물 나르는 사람들을 해산시킵니다. 이 자연스럽지 않은 에훗의 행동은 본문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19-26절까지 매우 아름다운 인클루지오(indusio) 구조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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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A와 A’를 보시면, 19절에 에훗이 지금 ‘우상’이 있는 곳까지 나갔다가, 다시 에글론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26절에 에글론을 암살한 에훗은 ‘우상’을 지나 도주합니다. (저자는 굳이 우상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상징적으로 지금 에훗은 ‘우상’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목적을 달성한 뒤, ‘우상’이라는 곳으로부터 탈출하고 있습니다.

둘째, B와 B’를 보시면, 두 번의 ‘들어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에훗이 에글론에게로 들어갑니다(20절). 그리고 에훗이 나오자마자, 즉시 왕의 신하들이 들어갑니다(24절). 우리는 에훗이 특수한 목적을 갖고 우상의 땅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바로 에글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에훗이 마치 불가능한 미션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특수 요원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에훗에 대한 소개는 15절에 등장합니다.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개역개정, 삿 3:15

그는 베냐민 지파입니다. ‘베냐민 (בֶּן־הַיְמִינִ֔י)’이란 단어의 뜻은 ‘오른손의 자손’입니다. 그러니까 에훗은 오른손의 자손에 속한 왼손잡이입니다. 주목해야 할 점이 또 있습니다. 여기 ‘왼손잡이’의 원어는 ‘이쉬 오테르 아드 예미노(אִ֥ישׁ אִטֵּ֖ר יַד־יְמִינֹ֑ו)’인데요. 직역하자면, 오른손이 금지된 남자(a man who is restricted in the right hand)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애에 의해서 오른손을 못 쓰게 되었다기 보다, 어떤 특별한 이유에서 오른손의 사용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사사기 20:16에 700명의 베냐민 용사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들이 모두 왼손잡이였다고 기록합니다. 베냐민 족속은 군사적인 이유로 아주 어릴 때부터 왼손 잡이 군인들을 길러냈고, 특히 그들은 성벽을 공격할 때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곤 했습니다(B. Halpern, BRev 4 (1988): 35.). 실제로, 에훗이 칼로 에글론을 찌를 때 그 힘과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손잡이까지 따라 박혔습니다(개역개정은 ‘칼자루’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로는 칼 손잡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훗은 베냐민 지파의 군사적 전략 차원에서 보더라도, 또 그가 불가능한 것 같은 특수한 임무를 잘 수행하고 깔끔하게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더라도, 그는 왼손잡이로 잘 훈련된 전사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절정인 C를 보면, 왼손잡이 에훗은 45센티 정도의 단도를 에글론의 비대한 배에 깊숙하게 찔러 넣었고, 도로 빼지 않았습니다(21절). 그탓에 에글론의 비대한 기름이 칼날에 엉겨 역겨운 모습이 되었습니다(22절). 우리가 다루지는 않았지만, 사실, 저자는 17절에서 에글론이 매우 비둔한 자였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개역개정, 3:17

왜 우상의 중심으로 상징되는 모압의 왕 에글론이 뚱뚱하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중요할까요? 현대에는 뚱뚱하다는 묘사가 부정적인 표현이겠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뚱뚱하다는 표현은 그가 매우 부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에글론의 비대함을 통해 사사기를 읽어내려가는 원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우상을 섬겨 큰 부를 얻게 된 에글론을 향한 부러움입니다. 여기에, 저자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즉, 에글론의 부가 에훗의 칼날을 통해 심판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아주 역겨운 그림으로 말입니다. 잠깐, 지금 에훗은 무엇으로 부요함의 우상을 상징하는 에글론을 심판하고 있습니까? 단연, 그의 칼이라고 대답하겠지요. 그러나 에훗은 자신의 칼을 들며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다(דְּבַר־אֱלֹהִ֥ים לִ֖י אֵלֶ֑יךָ)!” 정리하자면, 에훗이 에글론을 죽이는 장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요함의 우상을 심판하는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삿 3:18-26의 핵심 포인트 (pivotal point)는 에훗이 우상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19, 20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요함의 우상을 심판하고(21절), 우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이야기(24, 26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뭣이 중헌디?

결론입니다. “뭣이 중헌디?” 오늘 저는 우리가 성경 내러티브를 읽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내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어 성경의 ‘완료형 동사’(qatal)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저자가 내러티브를 끌고 갈 때 무엇을 강조하는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에훗 스토리의 중점이 그가 장애를 딛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거나, 에글론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암살했다고 보는 것이 심각한 곡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면, 에훗의 이야기는 우리의 깊숙한 곳에 뿌리 박혀 있는 우상에 대해 심판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러티브를 접할 때,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에 주목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연동하여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읽기’를 통해 더 아름답고 풍성한 삶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Over de auteur

기수

김기수 목사는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석사(MAR) 과정으로 성경 신학을 배우고 있다. 그는 개혁신학에 뿌리를 둔 성경 신학을 공부하고, 후에 기독교 윤리학을 공부할 계획에 있다. 그는 아내 지은과 딸 로윤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다.

Comments 1

  1. 히브리어를 배워야하나요?
    원어도 역사도 문화에도 무지한 성도들에게는…..
    올려주신 목사님 글처럼….
    뭣이 중한디를 잘 풀어서 전하시는 한 편의 설교가
    시도때도 없이 에글론이 부러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찌르는 에훗의 칼이 될 것입니다
    목사님…
    부디…
    많이 배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시는….
    좋은 목사님 되세요….
    그리하여….
    하나님에게 밥상 차리는거 잘 도왔다고…
    밥도 잘 담고…
    숟가락 젓가락 놓는 것도 참 잘했다고 칭찬받는 목사님 되시길…두 손 모아봅니다

이희경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