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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지저스』로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 (Christocentric Reading of the Bible)

『리딩 지저스 (Reading Jesus)』로 성경 읽기!

요즘 저는 아내와 함께 『리딩 지저스 (Reading Jesus)』를 활용하여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있습니다.1 이렇게 활용합니다!

  • 성경 읽기!
    • 책의 가이드를 따라 성경을 읽습니다. (개인적으로, <개역개정>의 번역에 아쉬운 부분이 있고, 그 어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번역> 으로 읽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새번역> 성경 읽기 채널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 레슨 읽기!
    • 교재는 한 주에 5개의 레슨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그 날에 해당하는 레슨 하나를 읽습니다.
  • 나눔하기!
    • 아내와 저는 그날 배운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성경 본문을 먼저 나누고, 다음 레슨의 내용을 종합하여 나눕니다.)
  • 영상 시청!
    • 한 주의 분량이 마무리될 때, 우리는 그 부분에 해당하는 요약 동영상을 시청합니다.2 저는 동영상을 먼저 볼 것인지, 마지막에 볼 것인지 고민을 좀 했었는데요. 책의 내용을 한 번 다 숙지하고 동영상을 보니까, 저절로 리뷰가 돼서 더 유익했습니다.

『리딩 지저스』는 웨스트민스터가 추구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해석학 (Christ-centered hermeneutics)”을 잘 녹여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유행(?)하는 큐티 (QT) 방법이 성경을 지나치게 미시적이고 주관적으로 보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면, 『리딩 지저스』는 성경 독자들에게 “그리스도 중심성 (Christocentric)”이라는 안전장치를 제공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그리스도 중심적 성경 읽기!, 즉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에 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왜 성경을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으로 읽어야 할까요?

단연, 우리는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 즉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으로 읽어야 합니다. “신약은 그렇다 치더라도, 구약은 예수님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크리스토센트릭 리딩이 가능한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 금방 이런 질문에 생기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우리는 구약마저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어야 할까요? 예수님에 대한 직접 언급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누가복음 24:44-45은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을 위한 가장 명확한 당위를 제공합니다.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예언서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45  그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새번역,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2001), 눅 24:44–45.

맥락은 이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36절). 제자들은 눈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면서 유령이라고 생각하여 놀라고 두려워했지요 (37절). 44-45절은 주님께서 그런 제자들을 진정시키시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선 45절부터 주목해 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당시, 아직 신약 성경이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성경이란 “구약”을 의미합니다.

“잠깐만요. 지금 예수님이 구약을 의도하고 계시지만, 메시아에 대한 예언 같은 일부분을 말씀하시는 건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44절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는 구약 성경에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한 모든 일을 지시합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구약 성경의 구체적인 리스트를 소개하십니다. 바로, “모세의 율법,” “예언서,” 그리고 “시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봤던 히브리성경의 목차는 우리가 보는 것과 다릅니다.

  • 율법서 (Torah, תּוֹרָה)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선지서 (Nevi’im, נְבִיאִים)
    • 전기 선지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 후기 선지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요엘, 아무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성문서 (Ketubim, כְּתוּבִים)
    • 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전도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3

히브리 성경은 구약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율법서인 “토라 (Torah),” 선지서인 “네비임 (Nevi’im),” 그리고 성문서인 “케투빔 (Ketubim)”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것들의 앞 글자를 따서 약칭으로 구약을 “타나크 (Tanakh, תַּנַ”ךְ)”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신 “모세의 율법,” “예언서,” 그리고 “시편”은 구약 성경 전체인 타나크를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다시 말해, 주님은 토라, 네비임, 케투빔으로 구성된 구약 성경 전체가 나를 두고 기록한 것이며, 지금 그 말씀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복음 전파로 성취었다고 설명하시는 겁니다 (46-48절).

따라서, 우리는 구약을 포함하는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 즉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으로 읽어야 합니다.

크리스토텔릭 리딩 (Christotelic Reading): 혹시,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을 잘못 인용하였을까요?

물론, 모두가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블록 (Danial I. Block)은 이렇게 비판합니다. “우리의 유대인 친구들이 화가날 법도 하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경전을 탈취(hijack)했고, 신적 저자와 인간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모든 텍스트를 그리스도로 만들었다.”4 블록이 사용한 “하이젝킹 (hijacking)”이란 단어는 테러 목적으로 항공기를 탈취할 때 사용하는 단어로 매우 강한 어조입니다. 쉽게 말해, 다른 뜻과 목적이 있는 유대인들의 구약을 그리스도인들이 탈취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가 제안하는 방식은 크리스토센트릭 (Christocentric)이 아닌, 그리스도 목적적 읽기 즉, “크리스토텔릭 리딩 (Christotelic reading)”입니다. 사실, “크리스토텔릭 리딩(Christotelic reading)”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구약 학자인 엔스 (Peter Enns) 입니다.5. 엔스는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을 동의하지 않았고, 대안적인 용어 최종 목적을 강조하는 “크리스토텔릭 (Christotelic)”이란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의 모든 절, 단락, 그리고 상징이 독자를 그리스도 인도한다”는 그리스도 중심적 (Christocentric) 해석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그는 크리스토텔릭 리딩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크리스토텔릭 (Christotelic) 접근은 구약 성경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한 선이해 없이는 구약 성경을 읽어도 예수님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Peter Enns, “Apostolic Hermeneutics and an Evangelical Doctrine of Scripture: Moving Beyond a Modernist Impasse,” WTJ 65 (2—3): 277.

엔스의 주장을 쉽게 표현하면, 1세기 사도들은 구약을 특별한 의도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목적)로 인용했고, 그 구약의 재 가공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목적적 해석이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구약은 가만히 두면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는 내용인데, 사도들이 그리스도 목적적으로 신학화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크리스토텔릭 (Christotelic) 독법을 “사도들의 해석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6

정말 그럴까요? 1세기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상관 없는 구약 성경을 필요에 따라 단어나 부분 등을 잘라 인용하는 오류를 범했을까요? 엔스가 말하는 것처럼, 그저 사도들의 해석은 그 시대의 산물이니 오류에 대해 이해하고 바라봐야 할까요? 엔스의 말대로라면, 예수님도 구약을 잘못 인용 하셨다고 주장합니다.7 정말, 예수님이 구약을 잘못 인용하셨을까요?

어떻게 성경을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으로 읽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로 돌려 봅시다. 웨스트민스터에서 해석학을 가르치시는 포이드레스 (Vern S. Poythress)는 크리스토센트릭 리딩(Christocentric reading)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중심성 (Christocentricity)을 모든 구절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모든 구절의 모든 단어로 확장한다.”

Vern S. Poythress, “Christocentric Preaching,” SBJT 22.3 (2018): 66 n5.

포이드레스의 설명은 성경의 모든 단어에 그리스도 중심성이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숨결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타당합니다 (딤전 3:16). 아울러, 계시 자체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관점에서도 매우 타당합니다 (요 1:14).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이것도 그리스도, 저것도 그리스도라고 연결하지 않습니다. 크리스토센트릭 해석가들은 성경의 모든 구절과 단어들에서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상징 (symbolism)모형 (typology)을 사용합니다.

상징과 모형은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라보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총장을 역임했던 성경 신학자 클라우니 (Edmund P. Clowney, 1917-2005)는 구약의 상징과 모형들이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과정을 삼각 구조로 설명했습니다.

FiG. 1.1: 에드워드 클라우니의 모형론의 삼각 구조
Edmund P. Clowney, Preaching and Biblical Theology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2002), 110.

아담의 예로 클라우니의 삼각 구조를 설명해 볼까요? 첫째, 구약의 상징적 (symbolism) 인물 중 하나는 아담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명확하게 그리스도의 모형 (typology)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새번역,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2001), 롬 5:14.

바울이 그러내는 진리 (T1)는 첫 사람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로서 모형”이라는 사실입니다 (롬 5:12절).

둘째,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라는 진리는 고스란히 그리스도가 인류의 대표자라는 진리로 모형이 됩니다. 그러나 성취 (fulfillment)의 관점에서, 바울은 인류의 두 대표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새번역,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2001), 고전 15:22.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모두에서 사탄의 시험에 실패한 아담을 그립니다. 인류의 대표자 아담의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서 승리할 대표자를 소망하게 합니다. 이에, 클라우니는 아담이 에덴에서 받은 시험이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것과 대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통찰합니다.8 이 대조는 아담의 실패와 그리스도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시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와 그리스도의 성취의 또 다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리딩 지저스』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 대한 모형을 드러내는 또 다른 상징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9 바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세 가지 광야 시험입니다. 첫 번째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배가 고프다며 원망했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만나는 주셨습니다 (출 16장). 이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마 4:4, 새번역; 신 8:4)” 하시며 이기셨던 예수님의 시험을 연상케 합니다. 두 번째 시험은 맛사 (‘시험’이라는 뜻)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며 원망했던 사건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것을 깊이 책망합니다 (출 17:2, 7). 이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마 4:7, 새번역; 신 6:16, 칠십인역)” 하시며 이기신 예수님의 시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출 32장).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 (마 4:10, 새번역; 신 6:10, 칠십인역)” 하시며 승리하셨습니다. 아담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대조적인 진리를 상징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시험에 다 걸려 넘어졌지만,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승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실패했던 세 가지 시험은 모세보다 위대하신 메시아를 대망하게 합니다. 이는 곧바로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시는 모습으로 성취됩니다. 따라서, 구약에 등장하는 모든 진리는 최종적 진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를 향하고 있습니다.

셋째, 적용의 측면에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징”에서 “적용”으로 곧바로 잇는 것은 오류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가 아담의 타락에 대한 본문에서,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 3:6)”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용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역시, 중요한 결정에 관해서는 여자가 하는 말을 들으면 안 돼.” 누군가 말씀을 이런 식으로 적용한다면, 얼마나 황당합니까? 이렇게 성경을 보고 바로 내 상황으로 끌고 오는 것이 소위 우리가 큐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범하는 잘못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이드레스는 그리스도의 역할에 대한 분별을 가진 뒤, 우리가 성경에 진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10 즉, 성경의 모든 개별 진리들은 그리스도의 최종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징적 진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통찰하고, 그 후에 우리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담의 실패를 읽을 때, 아담으로 인해 우리에게 죄에 전가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하여 의의 전가를 받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함께 바라보고 적용해야 합니다.

『리딩 지저스 (Reading Jesus)』로 그리스도 중심적 (Christocentric reading) 성경 읽기!

바라기는, 구약이 나에게 어떻게 잇닿아 있는지 의구심이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유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새번역,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2001), 눅 24:27.

그 후,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셨을 때, 제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새번역,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2001), 눅 24:32.

크리스토센트릭 리딩 (Christocentric reading)으로 구약을 보게 되면 구약을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립니다. 우리가 구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리딩 지저스』가 크리스토센트릭 리딩을 위한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각주

1) 『리딩 지저스 (Reading Jesus)』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시는 이안 더귀드 (Iain Duguid) 교수님과 조나단 깁슨 (Jonathan Gibson) 교수님의 강의를 집약하여 만들어진 교재입니다. 본 교재는 총 6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해 주기에 매우 유익합니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를 바라시는 분은 웹사이트 https://www.readingjesus.net/main/와, 소개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7yHcEGBwA&t=1171s

2) 『리딩 지저스 (Reading Jesus)』의 모든 레슨을 요약한 강의입니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68UlTaS5lt_sSPn82QlThS3zDY-JrbRR

3) 이안 더귀드, 조나단 깁슨, 『리딩 지저스 1: 더 큰 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서울: 웨스트민스터프레스코리아, 2021), 20.

4) Daniel I. Block, “Christotelic Preaching: A Plea for Hermeneutical Integrity and Missional Passion,” SBJT 22.3 (2018): 13.

5) Peter Enns, “Apostolic Hermeneutics and an Evangelical Doctrine of Scripture: Moving Beyond a Modernist Impasse,” WTJ 65 (2—3): 277. 엔스가 사용한 용어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라틴어 여격 “크리스토 (Christo)”와 목적을 의미하는 헬라어 “텔로스 (τέλος)”를 합성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엔스가 주장하는 “그리스도 목적적 (Christotelic)” 해석 방법은 1세기 사도들의 해석 방법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그리스도 목적적으로 신학화 (가공)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구약 사용을 보면, 다소 구약이 원래 말하는 맥락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엔스의 이러한 주장은 그의 책 Inspiration and Incarnation: Evangelicals and the Problem of the Old Testament. 2nd ed. (Ada, OK: Baker Academic, 2015)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6) Peter Enns, Inspiration and Incarnation: Evangelicals and the Problem of the Old Testament. 2nd ed. (Ada, OK: Baker Academic, 2015), 183.

7) Peter Enns, Inspiration and Incarnation: Evangelicals and the Problem of the Old Testament, 106-07. 엔스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했던 제2 성전기의 현상으로서 해석학의 방법은 지금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현재의 기준에서 틀린 것 같은 해석 방법이 당시에는 변증을 위한 설득력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사도들의 구약 인용을 1세기 당시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런 맥락의 해석적 방식을 크리스토텔릭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8) Edmund P. Clowney, The Unfolding Mystery: Discovering Christ in the Old Testament, special ed., (Phillipsburg, NJ: Westminster Seminary Press, 2014), 33.

9) 이안 더귀드, 조나단 깁슨, 『리딩 지저스 1: 더 큰 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서울: 웨스트민스터프레스코리아, 2021), 28-29.

10) Vern S. Poythress, “Christocentric Preaching,” SBJT 22.3 (2018): 48.

Over de auteur

기수

김기수 목사는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석사(MAR) 과정으로 성경 신학을 배우고 있다. 그는 개혁신학에 뿌리를 둔 성경 신학을 공부하고, 후에 기독교 윤리학을 공부할 계획에 있다. 그는 아내 지은과 딸 로윤과 함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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