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러더포드: 기도 응답을 구하는 이에게

다음은 17세기 스코틀랜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사무엘 러더포드가 1647년 출판한 『죽으시고 죄인들을 자신에게 이끄시는 그리스도』 (Christ Dying and Drawing Sinners to Himself)에 쓴 기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기도 응답의 장애물과 그리스도의 기도’라고 주제를 요약할 수 있겠네요. 러더포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맞닥뜨리는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떤 궁극적 위로를 주시는지 설명합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에 있어 많은 장애물을 마주합니다.

첫째, 우리는 응답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며, 신령한 은혜를 구한다고 하면서 육적 욕망을 뱉습니다. 우리의 소원에 대한 영적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기도가 끝납니다. 시편 18:41을 보면, 악인들이 소리치지만 구원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않고 그저 울부짖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 믿음이 응답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거나 욕망을 위해 구한 것(약 4.3)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화를 내고 흔들립니다.

셋째, 하나님께 드려 마땅한 기도로 입술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지 염려하기보다 우리 기도를 들으셨는지 염려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갈망하듯이 우리가 기도를 통해 예배하는 것에 있어 진지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구합니다.

넷째, 우리는 기도에 있어 그리스도를 중보자이자 대제사장으로 모시지도 않고 믿음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은혜를 얻기보단 필요를 위해 구하며 명료하고 강한 말로 기도합니다. 마치 기도와 이에 대한 응답이 간구와 은혜주심이 아닌 우리 노동이자 삯인 것처럼 말이죠.

다섯째,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한 내용대로 응답받지 않을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시는 성부께서는 사실상 우리 기도에 대한 본질적인 응답을 우리를 위해 마땅히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간구할 제목을 택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모두 응답받지만, 우리 기도는 종종 일반적으로 응답받으며 선한 것만 응답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보다 더 겸손히 그리고 지혜롭게 기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자랑하거나 기도를 들으시도록 하나님을 강압하지 않습니다. 종종 (기도 안의) 우리 열망은 그저 자랑과 다툼에 불과합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이 대답하시도록 강제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세상에서 가장 겸비하고 겸손한 그 은혜는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순종 가운데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기도를 간절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기도는 성도들의 기도보다 더 들으심을 받습니다. 우리 기도가 그분의 기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응답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도라는 달콤한 향은 강력하고 힘이 있는데, 한 위격으로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분으로부터 오는 기도이기에 그렇습니다. 한 분이신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도는 기도하는 것인 동시에 주는 것이며, 바라는 것인 동시에 허락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인 동시에 들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가 하늘에 올라갈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기도를 성부께 올려드리기 전에 그 기도의 영적 의미와 의도를 제거하지 않으시면서도 이를 새 틀 안에 담으시고 자신의 마음과 입에 두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향기 안에 그 기도를 담아 올리시며 그 기도 안에 우리가 넣었던 타락한 의미를 제하시기에, 이제 그 기도는 우리 기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기도입니다.

– 사무엘 러더포드, 『죽으시고 죄인들을 자신에게 이끄시는 그리스도』 (1647), 170-72.


짧게 첨언하자면, 러더포드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정사만 살펴보더라도, 그가 낳은 여러 자녀들 중 단 한 명만이 그가 소천할 때 생존해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던 시점에 이미 교회 개혁을 위해 투쟁하다 유배도 당했었고, 그가 힘써 동참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개혁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으며, 자녀들의 죽음도 많이 겪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1661년 자신이 추구한 종교개혁의 거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때도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의 토대는 바로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Photo by Jonathan J. Castellon on Unsplash

Over de auteur

재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17세기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의 교회론을 연구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의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많다.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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