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 타락 교리를 다룰 때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자유의지에 대한 내용이다. 자유의지 논쟁은 두 가지 관계에 대한 논쟁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우리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타락과 인간의 자유의 능력 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17세기 영국 개혁주의 신앙을 대변해주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인간은 완전히 자유를 잃었다고 천명한다. 인간은 영적 선을 원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를 도덕적 무능력(Moral Inability)라고 부른다. 펠라기우스는 은혜가 없이도 인간은 완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세미-펠라기우스주의는 은혜는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은혜 없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은혜만으로는 부족하며, 은혜 외에 타락 후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인간의 의지가 함께 동원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담의 죄로 인하여 부패한 본성으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하지만 원의(origianl righteousness)의 잔재가 인간의 의지 속에 남아 있다고 본다. 그 의지로 하나님의 은혜와 공조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타락과 죄의 힘은 너무나 강력하여 사람의 마음(영혼)의 경향은 오직 하나님만 바꾸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이 문제에 핵심은, 과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도덕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이 ‘제가 복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인간의 영혼을 재창조하시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먼저 주도권을 쥐고 시작하셔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 그리스도께로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unilaterally),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독적으로(monergistically), 독립적으로(independently), 그리고 절대적으로(sovereignly) 죄인의 영혼을 변화시키신다. 즉, 인간이 그리스도께 나올 힘을 가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단독적 중생(Monergistic Regeneration)이라는 용어는 중생(= 거듭남)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사역은 오직 은혜로만 이루어진다. 인간이 거듭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65에서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누구든지(No man)’는 논리학적으로 ‘전칭 부정 명제 universal negative proposition’라는 것인데, 모든 사람에 대해 부정하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 없다(can)’는 능력이나 힘을 이야기한다. 그 누구도 이런 능력이나 힘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게 올(come to me)’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아니하시면(unless)’는 필수조건을 보여준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It is granted to him by My Father)’가 바로 필수조건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인간은 여전히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선택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의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문제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속박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원함의 노예이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관한 것에 대한 원함이 없다. 그런 원함을 따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거절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원함 자체를 바꿔주시기 전에 우리는 결코 그분을 선택할 수 없다.
Thoughts 깊이 생각하기
대학 시절 저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도 잃을 뻔했죠.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하자 인간의 손을 들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많은 고뇌 끝에 신앙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매꿀 수 없어 보이는 자유의지와 절대주권의 간극을 매꾸기 위해 지극히 인간중심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은 존 파이퍼 목사님의 요한복음 강해 설교와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유가 인간 본질의 가장 밑바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 밑에 한 레벨이 더 있다고 알려준 것이죠. 그 이름은 ‘경향성 dispostion’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이 어딘가에서 헤매는 이유는 인간에게 모든 조건과 환경과 경향성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곧 자율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원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그러니 사실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문제는 인간론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내가 원하니까 고른거죠.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결코 원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의지는 철저히 속박되었고 죄의 노예인 것이며 도덕적으로 무능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는 사실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라기보다 인정하기 쉽지 않은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유의지 논쟁에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함으로 논점을 피해간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그리고 저 자신의 경험들을 돌이켜 봄으로서, 무엇보다 성경을 보면서 이 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갸우뚱했지만 한 번 이해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건 쉬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교리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예비 작업들이 있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지창조의 목적’, 존 파이퍼의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이 복음이다’ 등 저서들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며, 당신의 영광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진행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믿게 된 것이 그 계기였죠.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실 수 있으려면? 인간의 역할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역할이 극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일말의 능력이 있으며, 그 능력을 조금이라도 사용해서 구원을 받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만큼 영광을 덜 받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완전한 무능함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모든 과정을 홀로 행하신다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만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십니다. 브루스 웨어의 책 제목처럼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설명을 하는 것은 ‘더 큰 하나님의 영광(부흥과 개혁사)’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항상 당신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일하심을 보여줍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 갈취하여 스스로 높아지는 것보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저는 無가 되는 교리를 옹호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의 행복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가져가시는 것은 저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만큼 제 행복은 줄어들 것입니다. 제게 있어 의지의 속박을 인정하게 해주는 가장 근원에 놓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제 의지와 지성이 완전히 타락하여 전혀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고 원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은 제가 가진 경험으로서도, 신학적 체계로서도, 무엇보다 성경적으로도 일관성을 지녔다고 믿습니다.
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박사 과정 중 부르심을 받고 현재 시카고 베들레헴 교회 담임 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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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한 전적인 타락과 무능,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서, 두 손 들고 회개했다는 건 사기다. 빈 깡통 들고 구걸하는 가난한 심정으로 “물 좀 주소” 외쳐보지 아니한 자에게는 진정한 은혜와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 어떤 가치인지도 모르는 돼지 목걸이에 불과하다. 스스로 자기 심장 박동을 10초도 멈추지 못하고 자신의 꿈도 스스로 꾸지 못하는 인간이 잘난 면상 내밀며 영생 불사를 외치는 꼴을 보면 창조자 하나님의 긍휼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네 선한 양심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해 보라.. 십자가의 예수님을 조롱했던 유대인의 비난은 오늘 여기도 들려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