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쾌락중독증

 

1.

  SBS에서 ‘최후의 제국’이라는 이름의 4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습니다.

  제 1부에서, 솔로몬 제도의 ‘아누타 섬’이라는 곳이 등장합니다. 문명의 손이 거의 닿지 않는 곳으로 쉽게 접근조차 어려운 그 곳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은 거기서 거의 한달(정확하진 않지만) 정도를 머물다가 떠나게 되면서 작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섬의 원주민들이 정말 긴 시간 동안 통곡을 하면서 작별을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덤덤하던 제작진들도 흐느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래 함께한 가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두가 함께 세상이 떠나갈 듯이 우는 모습은, 사실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2.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보면, 놀랄만한 장면이 나옵니다. 단지 다른 나라의 사신이 와서 엄숙하게 의례적 문서를 읽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울었다는 것이죠. 한 도시의 성주나 나라의 왕이 죽으면 며칠이고 진정으로 곡을 하면서 슬퍼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3. 

  우리가 사는 이 현대에서 시선을 돌려 다른 시대나 혹은 문명과 떨어진 곳을 바라보면, 얼마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극’들로 넘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TV든 컴퓨터든 버스든 지하철이든 엘레베이터든지 간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광고의 향연, 재밌는 TV프로그램, 영화, 게임, 쇼핑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언제나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스마트폰 등등…

  이 수많은 자극들로 인해 우리는 정말 ‘깊은 기쁨’에 취하거나, ‘깊은 슬픔’에 빠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들로 인한 감정의 자잘한 변화 속에서 점점 무뎌져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원주민들의 모습이나, 중세 시대의 감정의 ‘격렬함’을 우린 이해하기 힘들어합니다.

  또한 이 수많은 ‘자극’들은 깊은 감정과 집중력을 빼앗을 뿐더러, 우리에게 ‘쾌감’을 추구하도록 부추깁니다. 진정 진지하게,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노력해서 얻어내는 ‘보람있고 가치있는’ 기쁨이 아닌, ‘쉽고 편안한’ 쾌락을 제공합니다.

  하나하나 각각의 즐거움들을 누리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쾌락을 주는 자극들의 향연은 우리를 그 속에 푹 잠기게 하여 중독 상태에 빠뜨립니다. 진정한 가치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옳은 삶에 대한 열정에서 멀어지도록, 쾌락에 나를 절여버립니다. 그 쾌락이 당연한 것이고, 나는 당연히 가질 자격이 있으며, 지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 골 1:24

  사도 바울은 고난을 기뻐하고 그것을 향해 일부러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 당시 누릴 수 있는 쾌락들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된 가치, 참된 기쁨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서구 세계의 편안함과 안전의 속박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하고, 자비와 선교의 희생으로 나아가게 하며, 순교의 순간에도 저를 지켜줄 만큼 깊고 강한 기쁨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거나 회복할 수 있습니까?” 핍박은 그리스도인에게 당연한 것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얻기 위한 싸움은 서구인들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희생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싸움이다.

– 존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24쪽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쾌락의 향연을 베풀어놓지만, 그것들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그 속에 깊이 파묻혀서 참된 가치, 고통을 감수하는 가치, 영적 싸움을 싸우고 죄를 죽여나가는 가치있는 기쁨을 추구하는 것을 잊을 정도로 몽롱해져 버립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참된 미덕을 발휘하기란 요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음식에 대한 ‘금식’ 외에 ‘미디어 금식’, ‘스마트폰 꺼놓기’, ‘컴퓨터 꺼놓기’, ‘전자기기 두고 다니기’ 등은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시야와 열정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방침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존경하는 모 교수님이 떠오르는 군요)

  저를 곰곰히 돌아보다가, ‘헛된 쾌락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 모든 영적 무기들은 녹슬고 근육은 쪼그라들고 풀어져갈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사그라들고 있다면, 혹시 이 병에 감염되었는지 체크해봐야겠습니다. 

Over de auteur

재국

디자이너를 꿈꾸던 공대생 출신 신학도.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교회사를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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