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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 있느냐?

 

 

너는 어디 있느냐?

인간은 하나님에게 묻습니다. 진짜 궁금해서 묻기도 하고, 화가 나서 묻기도 하며, 따지듯 묻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린 아담과 하와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담판을 지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모조품 하나를 만들어 열매 안 따먹은 척 매달아놓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행하는 이 행위는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연관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는 것이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가인은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신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여야 했지만, 그 분노는 동생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고, 급기야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인간은 자신의 자존심과 타인의 생명을 맞바꿀 수 있는 힘 센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정면으로 반하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님에도 스스로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된 대신,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져버렸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면 자신이 더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면 스스로 높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은 다른 사람이 동일한 폭력을 자신에게 행할까봐 두려워 떨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먼저 다가오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부끄럽고 두려워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나타셔서 질문을 던지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여기’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하는 아담이 ‘저기’ 나무 아래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문을 통해 아담의 현위치를 파악시키셨습니다. 거기서 그는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가야 했습니다.[1]

살인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은 이웃과의 관계도 깨어져버렸습니다. 더 이상 생명을 나누는 사랑의 관계는 사라지고, 서로의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생명으로 삼는 살인적 관계가 인간을 더 잘 설명해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질문을 물어오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그것을 통해 아담과 가인의 자리를 확인시켜주셨고, 해답을 위한 시작점을 찍어주셨습니다. 죄를 지어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첫 질문은 우리에게 소스라치게 놀라운, 맨정신으로 받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해답이 주어집니다.

질문하신 하나님은 열린 질문으로 내버려두신 것이 아닙니다. 해답이 없는 사유 놀이를 제안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2:1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느닷없이 나타나셔서 그를 내모십니다. 아브람의 선조들은 어쩌면 하나님은 이제 침묵하시며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때를… 그리고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조상이자 이스라엘의 아버지인 아브람이 역사적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명령과 약속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해답을 보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보이기 시작하실 뿐 아니라 해답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우리도 동참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줄 알았고, 동생을 죽이면 더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원하는대로 하면서 살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피해 나무 아래 숨은 우리에게 안식은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질문으로 우리의 자리를 확인시키시고, 서서히 해답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어디 있냐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셔서 질문하실 것입니다. “너는 어디 있느냐!?” 그리고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듯이 조금씩 다가오셔서 해답을 제시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질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게 되었고, 그분의 해답을 통해 내가 나아갈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2:1의 첫마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오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그분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경배하고 그분의 자비와 긍휼을 찬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1. 질문에 대한 통찰은 어제(3.3) 들은 한병수 목사님의 말씀에서 얻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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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Comments 1

  1.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은 눈을 감고 있기 떄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늘 우리를 보고 계신데 반해서요. 끊임 없이 방황하고 유리하는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 그래서 사람으로 오셔야만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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