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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LIP은 아름답습니다

TULIP은 아름답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고민하고 초안을 써내려가는데 TULIP Transformed for mission이라는 글이 Gospel Coalition에 올라왔습니다. 제가 생각한 내용과 너무 비슷한 내용이 비슷한 시기에 올라와서 깜짝 놀랐네요. 덕분에 참조해서 쓸 수 있었습니다.

위에 링크를 건 글에 따르면 구글에서 검색어를 입력할 때 뜨는 자동완성 기능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Why are Calvinists 까지만 쳐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자동완성으로 제안되었습니다.

Why are Calvinists so mean?
왜 칼빈주의자들은 그렇게 못됐나요?

Why are Calvinists so arrogant?
왜 칼빈주의자는 그렇게 오만한가요?

Why are Calvinists so smug?
왜 칼빈주의자는 그렇게 독선적이죠?

Why are Calvinists so negative?
왜 칼빈주의자는 그렇게 부정적인거죠?

문제는 이게 사실이라는 겁니다.

칼빈주의를 정의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겠습니다만 TULIP과 5Sola를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간편하게) 정의하는데는 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TULIP과 5Sola는 다음과 같습니다.

Total Depravity 전적 타락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Limited Atonement 제한 속죄
Irresistible Grace 거부할 수 없는 은혜
Perseverance of Saints 성도의 견인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Sola Fide 오직 믿음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보통 열 가지 기본적 교리를 인정하는 사람은…
아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꼬장꼬장하고 답답하고 단호하고 심지어 독선적이죠. 그리고 그런 이유는 우리가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보곤 합니다. 이 교리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이며 종교개혁자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이고 탄탄한 논리적 체계와 정합성과 함께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전 이 열 가지 기본 교리를 인정하는 개혁주의자가 잊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이 교리가 아름답다는 사실입니다. 혹자는 대체 교리가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전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시편은 왜 있는 것일까요? 어째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치밀한 예정 교리를 논하면서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했을까요? 진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참되신 동시에 아름다우시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아름다운 것은 단지 논리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저히 조화로울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진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만큼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전 이 글을 열 가지 기본 교리를 참이라고 믿는 개혁주의 동지들을 향해 쓰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교리가 참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 교리가 아름답다고 여기는지요? 이 교리가 참이라고 여기지 않는 분들은 이 교리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교리가 너무나 아름다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찬양이 터져나와야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의 불꽃을 지핍니다. 그것이 송영으로서의 신학, 아닐까요?

두 번째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은 이 교리 자체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리와 사랑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하셨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는 참 진리이시면서 십자가에서 놀라운 사랑을 몸소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과 달리 많은 경우 진리와 사랑은 대치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TULIP과 5Sola를 지켜내기 위해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고 꼬장꼬장해질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사랑보다 진리가 더 중요해서 진리를 위해서라면 사랑을 희생해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믿는 진리의 내용 자체가 사랑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리로 믿는 신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TULIP과 5Sol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리에서는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절대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고 무한한 은혜와 우리 인간의 비참함이 드러납니다. 이 교리를 인정하고 알고 믿는 개혁주의자라면,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완전한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인정하고 알고 믿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한 것과 같이 우리 모두는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사랑을 버린다면, 그 누구도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TULIP과 5Sola가 우리를 전사로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세 십자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318명의 용사를 이끌고 말도 안 듣고 죄를 사랑하여 소돔에 눌러 앉은 롯과 그 가족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좇아가 구출해낸 아브라함과 같은 사랑의 전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저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발견한 것은 텅 빈 사랑의 그릇이었습니다. 사역지로 나가야하는데 아이들에게 전해줄 교리 보따리는 한가득이었지만 그 교리가 나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양푼 그릇 바닥에 남은 간장 자국에 불과했습니다. 숟가락으로 긁어내려 해도 긁어지지 않는… 참 진리가 우리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딱딱한 모세의 율법과 정죄와 심판의 메시지로 가득찬 선지자들의 외침의 대강령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마22:37~40). 개혁주의가 참 진리라면, 영혼들을 생명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 피어나는 생명은, 전 상상할 수 없습니다.

TULIP의 아름다움은,
TULIP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기보다,
내가 먼저 죽는데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나의 선혈로 물든
TULIP은,
아름답습니다.

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박사 과정 중 부르심을 받고 현재 시카고 베들레헴 교회 담임 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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