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에 앞서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이 땅에 당신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소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주사 당신께 더 기도하게 하시고, 행할 것을 깨닫게 하소서.
죄송하다는 말도 먼저 해야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많은 분들,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상식적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의 성인으로서 저의 몫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여 드렸을 실망감과 분노에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눈물에 위로가 되지 못하고, 외치는 소리에 힘을 실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구조적인 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으며, 더불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회가 얼마나 세워지기 어려운 것인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간접적으로 보아온 저 같은 사람들의 충격이 이 정도일진대,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어떠했을까요. 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후로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리고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최근 저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13분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입니다. 즉 13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분들의 이야기지만 유가족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문 기사나 TV를 통해 세월호를 접한 분들께는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면 최대한 ‘덜’ 걸러낸 그들의 이야기를 들는 것을 통해 사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유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유가족들은 다양했습니다. 유일한 자녀를 세월호에서 잃어버린 분들, 자녀가 한 명이 아니라서 남은 자녀들도 함께 고통받는 경우, 사건이 일어나고 직장을 그만두신 분들, 아픔을 안고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들, 생사가 위중한 병을 앓으시는 분, 삶의 유일한 희망을 잃어버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 솔직히 전 책의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들의 아픔의 무게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
유가족들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인 박종대 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1]
… 우리 아들이 내준 숙제인데 안 할 수 없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정부나 수사당국이 유가족과 국민을 무시해도 보통 무시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실상 뚜렷한 수사결과가 없어요. 안 한 거예요. 방송도 유병언 잡는거나 중계해댔고… 이쯤이면 정부에서 적어도 ’이 사건이 이래서 일어났고, 저래서 일어났고’는 설명해줘야죠. 유가족들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나서야 할 상황이니까요. 굉장히 답답합니다. 그냥 지켜봐서 안 될 거라면, 내가 개인적으로라도 해야죠.
목숨보다 소중한 자녀를 잃게 된 것도 가슴 아픈데, 사고의 원인과 사고 이후의 구조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상황은 그들을 일어서게 했습니다. 사고 이후 구조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다가 해경에 의해 구출된 선장과 선원들의 존재는 이 사건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들에 대한 재판도 속시원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2] 사고가 일어난 것은 백번 양보해서 이해한다 치더라도, 더 많은 이들이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구조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침몰 이후 정부의 구조 대응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유가족들로 하여금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소중한 이를 잃었다는 슬픔 속에서, 조금씩 그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조 과정에서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고 도망간 선원들은 둘째치고, 구조하러 온 해경마저 최선을 다해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가족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함께 구조에 참여했던 민간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민간 선주들이 오히려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해경이 제대로 도왔더라면 훨씬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3] 침몰 이후에도 엄청난 구조 작전이 진행 중이라는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별다른 구조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얼마 후 진행된 진상규명 작업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사실상 뚜렷한 수사결과가 없었고, 선원들의 재판과정에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정조사 과정을 살펴본 그들의 결론은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4] 언론 또한 심각한 문제를 보였습니다. 사건 초기에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오보를 보냈으며, 사건 당일날 ‘사망보험금’이 얼마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니,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하면서 ‘육해공 총동원, 하늘과 바다서 입체적 구조작업’, ‘함정 23척, 병력 1천여 명 동원’, ‘해군 “가용 전력 모두 투입”’, ‘장비·인원 총동원… 필사의 수색’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첫날 실제로 투입된 잠수사는 단지 16명에 불과했습니다.[5] 게다가 “언론의 무책임한 취재활동으로 인해 구조 수색이 늦어지는 일”도 일어났습니다[6] 바로 옆나라 일본에서 만든 세월호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준 것 만큼의 예의와 공정성을 추구했다면, [7] 언론에 대해 그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유가족들 스스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삶조차 꾸려나가기 힘든 세상에서, 이길 수 없어보이는 싸움을 시작한 것은 가장 소중한 이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싸움을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생명보다 아꼈으나 잃어버린 자녀들을 두 번 죽이는 행동입니다.
그들의 싸움은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를 안전한 사회로 만들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2학년 9반 고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8]
누구는 진실을 밝히는 게 뭐 중요하냐. 앞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라고 하는데. 썩은 데가 있으면 그곳을 파내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해야 하는데 그냥 두고 새 살이 돋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못하고 의문만 남기는 법이라면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어요. 그때 가서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냐고.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람인 이상,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실수를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그들만의 규칙을 세우고, 최대한 당당하게 이 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2학년 1반 고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는 세월호 유가족이 하는 416TV 방송을 시작한 것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9]
… 이 방송만은 고난도 기술 따지지 말고 순수하게 가자, 진실만을 바라보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머리를 굴리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 좋은데 자꾸 세상 권력의 흐름에 끼어들어 똑같이 머리를 굴리면 안돼요. 우리는 순수해야만 침몰하지 않습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순간 다 말려듭니다. 우리는 그동안 평범하게 자식 키워온 부모이지만 그 사람들은 평생 동안 술수를 써가며 권력을 유지해온 사람들인데 그들의 방식으로는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식으로 싸워서 이긴다 해도 이긴 게 이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제 4월 16일이 가까워오고 참사가 일어난지 1년이 다되어가는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시행령 문제를 놓고 다시 외치고 있습니다. 삭발을 감행하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와 진행을 요구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냥 외면해버릴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대한민국이 바르고 건설적인 국가가 되도록 힘쓸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둘째,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이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당연히 그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도와야 마땅합니다. 그냥 묻어두고 끝내는 것은 국가에 대해서도, 지체들을 섬기도록 명하신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도 직무유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창 1:27).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히 1:3)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그분의 성품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남준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10]
하나님의 형상은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단순하고 비가시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의 특성일 뿐만 아니라, 지성과 의지 같은 영혼의 심리적 기능들과, 나아가서 인간의 육체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 아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때 단지 그들의 영혼 구원만 아니라 육체의 비참함을 개선하는 일에도 헌신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세요.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순종하는 것입니다.”라고요.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공의로 행하는 사랑과 사랑으로 행하는 공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를 보여줍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결코 그냥 넘기는 분이 아니시며, 모든 죄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신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공의를 갈망해야합니다. 이 세상이 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개탄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에 의로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공의가 가장 잘 드러나야 하는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되어야 하며, 교회 안에서 불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공의를 위해 그들이 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타락만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을 지적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불의하게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강탈했을 때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불의한 헤롯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지막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마 23:23).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공의의 심판자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자리에 위치하게 하셨고,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책임과 의무와 권리를 주셨습니다. 지금이 절대왕정 시대라면 몰라도, 우리는 올바른 국가를 세우기 위해 말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왕의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올바르게 통치했는지에 대해서 마지막 날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달란트를 받은 자는 그 달란트를 잘 썼는지에 대한 결산을 할 날이 옵니다. 우리는 민주국가의 일원으로 받은 책임과 권리를 바르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면서 민주국가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사랑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약자라고, 비천한 자라고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야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세상으로 나가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까? 사랑을 행해야 한다는 것은 특별한 예를 더 들지 않더라도 다들 동의할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는 함께 합니다. 공의는 사랑으로 행해야하며, 사랑은 공의롭게 행해져야 합니다. 공의를 사랑으로 행한다는 것은 그 공의가 타인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의를 행하는 원동력이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가 참사를 겪은 이들을 돕지 않는 것은 사실 공의롭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분노하지만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가족들이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가 공의가 필요한 곳에 공의를 행하지 않는 이유는 공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아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을 공의롭게 행해야 한다는 것은 사랑을 질서 있게 행해야 한다는 것, 즉 사랑이 필요하고 행해져야 하는 곳에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을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의롭게 행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싸움
저는 불의한 일에 대해 자주 분노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행동은 별로 못하는 자입니다. 분노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저의 모습에서 저는 두려움을 봅니다. 어떤 행동 하나가 저에게 돌아올 손해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자주 두려워합니다. 아,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사랑이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자신의 사업이 어려움에도 유가족들을 위로한 분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운영하는 치킨집이 결국 망했지만 사랑을 베푸는 삶을 실천했습니다.[11] 손해와 두려움을 이기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또한 저는 제가 원하는 사람만을 좋아하는 경향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무관심해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나마 있는 사랑조차 공의롭게 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저에게서 봅니다.
사랑과 공의가 필요한 곳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것은 죄와 비참으로 절망하는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그분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비추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십니다. 사랑과 공의를 들고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애통하며 은혜를 간구해야하고, 주신 은혜를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를 간과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복음이 진리임을 증거하는 것이며, 세상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혹은 자신은 더 바쁜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 저 자신을 포함하여 –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랑으로 공의를 행하고, 공의롭게 사랑을 행하는 우리가 되길 간구합시다. 그럴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etc. 이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들을 알고 싶다면 최근에 출간된 책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1심 재판과정과 결과를 잘 정리해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또한 고 박수현 군의 블로그에서도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이 포스팅에서 사용된 이미지는 송미현 작가님의 일러스트입니다.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195. ↩
- 최근의 재판에 대한 글은 blog.naver.com/suhyeon1053/220310428834를 참조.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179.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195. ↩
- http://reportplus.kr/?p=11564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203.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57.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276.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185. ↩
- 김남준, 『인간과 잘 사는 것』, pp. 68–69. ↩
-
『금요일엔 돌아오렴』, p. 105. ↩
Comments 2
전적으로 공감합니다.ㅠㅠ
세월호는 여전히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네요…
교회가 정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또 그렇게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는 곳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드러내야만 하는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봇에게 돌을 던지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Author
네.. ㅠㅠ 가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