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 수 있는 기회

겸손한 고백

런던, 물가가 참 비싼 그곳을 예기치 못하고 가게 된 우리 부부의 여행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영국 친구들이 먼저 묵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바로 스티브&레이첼 부부였죠. 자신들의 집에 묵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래서 여기에서 일주일을 동안 즐거운 교제를 나눴습니다. 나중에 타버나클 교회의 한 장로님 부부도 자기 집에서 묵어도 좋다고 했었습니다. 그것도 감사했었죠.

참 여러가지 배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거실을 침실로 쓸 수 있게 꾸며준 것부터 시작해서 불편함없이 지낼 수 있었죠. 무엇보다 이들과 함께 드린 가정예배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지금도 글 쓰는 중에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하네요.

마지막 날 저녁, 이들과 식사할 때 너무 고마웠다고 이야기하자, 스티브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환대(hospitality)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

가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기에, 제 마음에 더 와닿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자신의 것을 잘 베풀고 대접을 잘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에서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기쁨으로 실천하는 이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경건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환대하는 이유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삶이 아니냐는 겸손한 고백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고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실천해나가는 성도들의 공통된 대답입니다. 제 결혼식 때 기쁨으로 이것저것 궂은 일들을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을 때, 그분들의 대답도 그랬습니다.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어!”

환대, 성경의 가르침

환대는 성경의 가르침이며, 아브라함과 롯은 그런 환대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었죠. 사실 초대교회 때 이러한 환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교회가 커가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1] 복음을 전하러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나그네에 대한 대접은 큰 힘이 되었죠.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도 곳곳에서 이를 권면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정말 경제적인 시대입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이 시대에 아낌없는 환대는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생일선물을 주더라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값의 선물을 내 생일에 돌려받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결혼 축의금 문화는 말할 것도 없죠. 기브앤테이크가 당연한 이 시대에 아낌없는 환대는 손해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환대를 베푼 이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하는 것일뿐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환대는 손해가 아닌 사랑을 행하는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했기에 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에 이것은 그들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베풀지 않는다면, 베풀었던 것들이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볼 때 손해본 것으로 느끼고 오히려 시험에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런던에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로 여행을 갔을 때, 거기서 유학을 하는 중인 한 목사님 가정에서도 아낌없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분명 상황이 어려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맛난 음식을 손수 대접하고 안방까지 내어주더니 마지막 식사를 사겠다는 것을 절대 만류하며 끝내 마지막까지 대접해주셨죠. 농담삼아 “이거 대접하려고 적금 모아둔거니까 우리가 낼거야”라고 하셨는데, 농담 같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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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를 받는 입장에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베푸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 것 같은 저를 볼 때 많이 부끄러워지네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시키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입니다.

환대하는 것, 베푸는 것,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그분 뜻대로 사용하는 삶, 그것이 우리가 경험해야할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되어야 되겠죠?

* 표지 그림의 제목은 The Hospitality of Abraham입니다.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David A. Desilva, 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Contexts, Methods, and Ministry Formation, IVP, 2004).  ↩

Over de auteur

재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17세기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의 교회론을 연구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신학적 논의들, 특히 교회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많다. 『신앙탐구노트 누리』의 저자이며 초보 아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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