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흔한, 하지만 언제나 그리운…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고, 누구나 가진 것 같으나 언제나 그리운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사회가 아무리 개인주의화되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홀로인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존재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돌아가셨거나, 멀리 계시거나, 다투어서 평생 얼굴 안 보고 살기로 마음 먹고 혼자 살고 있더라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부모가 없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실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누구도 완전한 의미의 개인주의자는 될 수 없어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몸과 마음이 장성하면서 개인주의자가 ‘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개인주의자일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든 불신자든 가족을 단순히 핏줄로 엮인 관계이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 가족 안에 웃음꽃이 피길 원합니다.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따뜻한 곳이길 원합니다. 사회가 아무리 차갑고 냉랭해져도 그 지친 마음을 받아줄 가정에 대한 소망을 거두진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가정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가족’이란 이름은 참 흔하지만 언제나 그리운 것 같네요. 한 핏줄을 나눈 생물학적 가족을 이루기는 쉬우나(안타깝게도 요즘은 이것도 어렵죠)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되는 참 가족 이루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함께 나누었던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이번 칼럼은 가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가족의 시작, 결혼
가족이 한 명이 아닌 둘 이상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그러면 최초의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는 걸까요? 답이 너무 뻔해서 시간 끌 필요 없겠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함으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인간사가 아무리 오래되었고 대륙간, 나라간, 민족간 문화 차이가 아무리 크다해도 동일하면서도 유일한 한 가지 방식입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형식인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죠. 결혼에 대해 성경적으로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은 가정에 대해 성경적으로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데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구체적으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한 마디 더 하고 싶네요. 저는 동성애나,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 분위기나, 연애에 관련된 온갖 문제들과 질문들은 결혼을 올바르게 이해했을 때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주로 이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야기하는 결과나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당위에서 시작하여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합니다만, 결혼의 성경적 이해에서 해답을 찾는 것만큼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
뭐라, 공동체가 시작이라고?
이번엔 결론부터 얼른 말씀드리고 싶네요. 성경은 사실 충격적인 사실로 결혼을 묘사합니다. 연애는 당연한 것이고, 한 남자와 한 여자 각자의 감정과 의사가 가장 중시되고 우선순위를 지니는 결혼 문화가 보편적인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충격적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개인이 아닌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진 공동체, 곧 가정으로 시작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성경은 아담 홀로 등장하는 장면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짝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사실 이는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왜냐하면 모든 창조물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만드신 인간에 대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죠. 하나님께서 ‘좋다!’라고 하신 것은 미적으로 아름다우며, 그 모습과 삶 전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질서 가운데 있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의미를 한 방에 표현하신 것입니다. 결국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창조됨으로 하나님의 전체 피조 세계는 가장 온전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처음부터 둘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으며 둘 모두에게 동일한 지상명령을 주셨다는 데서도 유추해볼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우리 시대는 개인이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라고 생각하며, 개인과 개인이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각 개인이 허물어지지 않는 수준까지만 요구하고 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독립적 개인인 상대방의 뜻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모든 수준의 말과 행동은 ‘강요’라는 이름으로 폭력화되었죠. 그래서 모든 생각과 행동과 심지어 정책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것이 ’옳은 것’이빈다. 친구도 부부도 가족도 학교도 교회도 국가도, 그 어떤 공동체도, 개인의 권익과 행복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부부 간에도 ‘프라이버시’가 생기게 되었고,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게 되었으며,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습니다. 개인은 허물 수 없는 철옹성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내가 무너지기 전까지만 가능하며, 헌신도 내가 지치기 전까지만 선하고, 관계도 내 의지와 편이가 침범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유지됩니다.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렇다면 개인과 개인은 더 이상 성경적 의미에서 ‘연합’하지 못하고 다만 계약적 관계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제 생각이 지나친 걸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성경은 개인과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나 둘이 온전히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을 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보기에 좋았더라!’
온전한 인격이 만나 온전한 연합체를 이루다
물론 아담과 하와는 각자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의지와 지성을 지닌 완전하게 독립적인 인격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보고 성인 남녀가 결혼하지 않으면 어딘가 모자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역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결혼을 포기한 자(고자가 된 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도 바울도 결혼과 독신 중에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이 부분이 정말 놀라운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냥 철학적 의미에서 세 위격이 한 본질을 지니고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 위격은 완전한 사랑의 연합을 하고 계시며 서로와 교제하시고 서로를 기뻐하시며 서로의 영광과 존귀를 최고로 높이십니다. 온전한 사랑의 연합을 통하여 한 하나님으로서 일하실 뿐 아니라, 세 위격이 달리 역사하시는 중에도 그 사랑의 연합이 너무나 완전하여 협업에 한치의 오차도 없으십니다. 그 사역의 가장 선명한 두 가지 예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우리를 구원하신 사역이겠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연합을 닮은 교회의 연합은 한 명 한 명이 구원을 받아 모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동체로서 부름을 받아 사랑의 연합으로 초대받은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가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하나되도록 하실 때 두 사람의 개성과 독특성을 무시하시고 둘을 섞어 한 사람을 만드시지 않았고, 그렇다고 사회계약론처럼 악수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함으로서 서로에 대한 의무를 지는 존재라는 의미로 연합하게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 꿈꾸셨던 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을 하여 서로를 향해 자신을 내어주고 외적 약속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하나가 되며 계속해서 더 사랑으로 연합하여 놀라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가정 안에서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 안에서 결실하게 하셔서 아름다운 자손을 가지게 되어 ‘사랑의 열매’가 무엇인지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연합으로 부름받음
이렇듯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참예할 수 있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각 개인이 뿌리박은 토양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있는 반석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을 하나로 이어주는 고리는 가정이라는 사랑의 연합이며, 구원받은 모든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사슬은 교회라는 사랑의 연합입니다. 우리의 죄와 세상은 ‘하나’를 개인으로 축소시킴으로서 사랑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더 거대하고 아름다운 하나’를 간과하고 잃어버렸습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한 교회와 한 가정은 결코 개인을 집단에 예속시키기 위해 뭉게버리는 폭력적 형태의 연합이 아니며, 그렇다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 지켜야 할 의무 목록에 불과한 것도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온전하게 선 인격이 상대방을 향한 사랑에서 자신을 기쁨으로 드리고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의 연합입니다. 우리 모두 감격스럽게도 그런 사랑의 연합으로 부름 받은 것이죠. 너무도 흔하지만, 언제나 그리운 이름인 ‘가족’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연습하고 경험하는 터입니다.
긴 시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해 연재했습니다. 제 식견과 이해가 짧은 탓이 가장 크겠지만, 무엇보다 삼위일체라는 주제가 쉽지 않아서 항상 잘못 전달하면 어떻하나 싶어 불안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연재를 마치려니 말 그대로 시원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앞서네요. 혹시나 이 글들에 오류나 과장이나 비약이 있다면 전적으로 제 이해나 전달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제 글이 더 귀한 선배들의 글을 접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함에 접근하는 문턱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었다면 제 할 일을 했다 생각합니다. 긴 시간 글을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Comments 1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긴 글들을 쓰시기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도와 고민과 시간과 준비와 정성이 필요하셨을까요.
저는 그저 컴퓨터 앞에 편히 앉아 이 벅차게 아름다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읽었습니다.
이 글들을 통하여 제 가정과 교회와 삶에 새로운 의미와 색깔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레임이 참으로 오랫만에 저의 전 존재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 초대받은 아무 자격 없는 자 … 그저 감격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