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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날 살렸습니다.” – 마이클 리브스와 나눈 대담

마이클 리브스 인터뷰 성사!

지난 9월28일 특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진짜배기 멤버들이 출판사 복있는사람과 함께 「선하신 하나님」, 「꺼지지 않는 불길」,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 (이상 모두 복있는사람 출간)의 저자인 마이클 리브스를 인터뷰한 것이죠! 마침 리브스 목사님이 한국에 온 기회를 틈타 복있는사람에서 시간을 잡고 진짜배기에 먼저 연락을 주셔서 귀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후후후) 감사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멤버들 모두 「선하신 하나님」이나 「꺼지지 않는 불길」 등을 통해 한국에 새롭게 소개된 마이클 리브스란 저자에 마침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만남의 기회가 참 감사하고 귀했습니다.

사실 뭔가 제 색깔을 잔뜩 묻혀 인터뷰를 버무리고 싶습니다만, 일단 인터뷰 내용 자체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고 객관적으로 그 날 나눴던 이야기를 전달해야 독자 여러분이 불필요한 잡음이 없이 마이클 리브스라는 저자를 직접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인터뷰 전문을 읽기 좋게 갈무리하는 글을 먼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인터뷰 자체가 장장 2시간 가까이 쉴새 없이 열띤 대화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알찬 내용들을 그대로 담는 것만으로 분량이 상당하기도 하고요. (참 길지만 주옥 같은 표현들과 통찰들이 많으니 정독하시면 큰 도움 얻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질문 목록을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읽기 편하게 하려고 실제 인터뷰 때 순서와 조금 바꾼 점 알려드립니다. 중간 중간에 흥미롭고 도움이 되는 다른 이야기들은 중심 주제에서 벗어나는 경우 과감하게 제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우니까 두 번째 글로 짧은 인터뷰 영상들과 함께 제게 검열당한(?) 부분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이제 들어갑니다.
  2. 누구십니까?
  3. 본격적으로 책 얘기해보겠습니다. 특히 「선하신 하나님」에 초점을 맞춰서! 
  4. 이 책, 왜 쓰셨나요?
  5. ’선하심’과 ‘삼위일체’의 연관성에 대해 더 파들어갑시다.
  6. 삼위일체를 어떻게 접근할까요?
  7.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어떻게 생각해야하죠?
  8.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쉽게 범하는 오류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9. 구체적으로 삼위일체를 우리 삶과 연결시켜봅니다. 일단 교회와 가정입니다.
  10. 선교와 전도는 삼위일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1. 기도와 설교는 삼위일체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12. 제 삼위일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13. 다른 책들과 다음 저작 계획을 물어봅니다.
  14. 마무리합시다!
드디어 만나다

리브스 목사님은 정말 크시더군요. 사진으로만 보셔도 아실 겁니다. 진짜배기 멤버 중 저와 정규는 덩치에서 어디가서 밀리지 않고, 재국은 키로 어디서 밀리지 않는데 이 분은 어찌나 크신지 첫 악수에서 우리 모두 제압당해버렸습니다. 외국에서 오신 손님들은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시지만 정작 어떤 스케줄이 어떤 목적을 가진 어떤 대상과의 스케줄인지는 잘 모르고 주어진 역할만 감당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진짜배기 블로그와 멤버들, 그리고 이 인터뷰가 성사된 계기와 인터뷰 전반적인 진행 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반 넘게 진행된 인터뷰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 한 명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부터 직접 읽어보시면 쉽게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문, 바로 들어갑니다.

1.이제 들어갑니다.

정규: (한국에 계시는 동안)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좋은 추억 만드셨어요?

Reeves: 네네. 그럼요. 한국에 올 때마다 놀라는 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따뜻한 환영입니다. 정말 세상에 어느 나라가 또 이렇게 손님을 환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올 때마다 즐겁습니다. 따뜻한 환영과 맛난 음식! 전 한국 음식 정말 좋아해요. 김치! 영국에선 맛좋은 김치를 구하기 정말 힘들거든요. 전 김치 정말 좋아합니다. 어제 저녁엔 불고기를 먹었고요. 맛있는 한국 음식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2.누구십니까?

정규: 저희가 알기로 목사님이시면서 신대원에서 가르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음.. 역사신학과 조직신학도 가르치시고, 보니까 설교학과 목회학도 가르치시네요. 어렵지 않으신가요?

Reeves: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복음의 교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 이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흘러가길 원합니다. 단지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요. 제가 목회학(pastoral spritual formation)과 설교학을 가르치는 이유죠. 결국 ‘어떻게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할까?’라는 질문을 생각하며 일하는 것이죠.

정규: 그렇게 하는 것이 힘겹지 않으신가요?

Reeves: 아니요. 전혀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전 다양한 대상에게 글을 쓰고 가르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그리고 교리와 역사신학과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어떻게 그것들이 적용되는지 가르치는 게 즐거워요. 그래서 전 스스로를 교사이자 설교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강의 때 설교하지 않으려면 정말 노력해야 할 정도랍니다. (모두 웃음) ( 영광: 더 설교자에 가까우시네요.) 맞아요. 마음은 더 설교자에 가깝습니다.

정규: 하시는 사역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유니온 신학대학(Union School of Theology)의 학장이시잖아요. 저희가 알기로는 단지 학교가 아니라 풍성한 자료들도 웹사이트에 있고 그렇던데요. 소개 해주실 수 있나요?

Reeves: 물론이죠. 유니온 신학대학은 ‘유니온’의 일부입니다. (유니온 전체는) 연구 센터, 자료 관리부서(여기서 웹사이트를 운영합니다. www.uniontheology.org), 신학대학, 그리고 선교부로 이루어져있죠. 신학대학 캠퍼스는 웨일즈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웨일즈 외에도 전 세계 15군데에 캠퍼스가 더 있습니다. 거기서 교회 지도자들을 성장시키고 그들이 다시 나가 교회를 키울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유니온 사역은 단지 학교 사역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각 지역으로 흩어져 교회를 성장시키고 튼튼하게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료들을 제공해주는 역할도 감당하는 것이죠. 한국 독자들이 얼마나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유럽은 더 이상 기독교 대륙이 아닙니다. 한 때 비슷했지만 지금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은 선교지이고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속합니다. 재복음화가 필요한 곳이죠.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우리는 리더들을 길러내어 교회를 건강하고 튼튼하고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3.본격적으로 책 얘기해보겠습니다. 특히 「선하신 하나님」에 초점을 맞춰서!

정규: 인터뷰 시작으로 먼저 쓰신 책들에 대해 얘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어로 벌써 세 권이 출판되었습니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옆에 쌓아둔 책들을 가리키며) 이 책들이고요. 이 책들에 대해 모두 얘기하면 좋겠지만 이 책(「선하신 하나님」을 들며) 한 권에 좀 집중해서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영어권에서 이 책이 두 가지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걸로 아는데요. 하나는 ‘선하신 하나님the Good God’이고, 다른 하나는 ‘삼위일체 안에서 기뻐함Delighting in the Trinity’죠? 한국어 책은 전자, 선하신 하나님이란 제목을 채택했습니다. 애초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어떤 제목이 더 저작 의도를 잘 반영해준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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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이 영국과 미국에서 다른 제목으로 나왔다. 영국 원제는 ‘the Good God’이다. 우리나라는 영국 원제를 따랐다.

Reeves: 이렇게 된 건, 처음 미국 IVP에 갔을 때 이미 ‘선하신 하나님’과 매우 비슷한 제목의 책이 출판되어 있다고 말해주었어요. 그 책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이 헷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결국 출판사에서 ‘삼위일체 안에서 기뻐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전 두 제목 모두 좋아요. 각자가 보여주는 게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경우엔 오직 이 하나님, 삼위일체인 하나님만이 우리가 원하는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규: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선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죠?

 

Reeves: 바로 그거죠. 그게 제가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삼위일체라는 것을 하나님에게서 제거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삼위일체는 이상한 첨가물이라는 것이죠.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에요. 삼위일체가 없이는 선한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우리가 갈망할만 존재인 이유는 그분이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신들은 이렇게 아름답거나 우리가 갈망할 만한 존재가 아닌 것은 그들이 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미국에서 낸 책 제목인 ‘삼위일체 안에서 기뻐함’에 연결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여기 하나님에 관한 진리가 있습니다. 이제 이해가 좀 되시나요?’라고 말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삼위일체에 관한 책들이 있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군. 하지만 좀 지루한걸.’이라고 말할 겁니다. 전 지겨운 책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제 책을 읽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내려놓고 단지 ‘난 이제 삼위일체 교리를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이신가! 영원토록 그분을 위해 살며 사랑하고 싶다!’라고 말하길 바랐습니다.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1-16-%ec%98%a4%ed%9b%84-8-28-00

정규: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었어요. 하나님이 놀라운 하나님이신 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아 내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기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Reeves: 그게 바로 신학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제게 (방금) 조직신학과 설교학을 함께 가르치는 것에 대해 물었죠?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신학은 예배를 위한 것입니다. 신학이나 복음을 배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지 못한다면 잘못 가르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규: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말이죠.

Reeves: 정확해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분을 참되게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정규: 그게 바로 예배가 의미하는 바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요.

Reeves: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과 ‘그리스도, 나의 생명’의 중요한 주제에요. 나도 하나님도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여러 행위의 나열로 보고 싶어하진 않는다는 것이죠. 기도모임에 갔다가 예배 갔다가 그리고 어느 정도 도덕적이고 수용 가능한 정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우리 마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더 자신을 만족하게 하는 분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그리스도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좋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복음에서 떠나지 않고 내리막길을 걷지 않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회복되며 성장하는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단지 외면적 모습뿐 아니라 내적 건강까지 말입니다.

정규: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이란 거죠?

Reeves: 정확합니다. 바로 그거에요.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만족할 수 있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Interview with Michael Reeves

4.이 책, 왜 쓰셨나요?

영광: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목표는 무엇이셨나요? 어쩌면 개인적인 것들, 교수님의 개인적 경험일 수도 있겠고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교수님의 흥미를 끌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정하셨을 수도 있겠고요. 저희가 책을 보면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은 이 책이 삼위일체를 다루는 책인데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매우 쉽고 수용하기 좋은 방식으로 쓰여졌다는 것이었어요. 저 자신도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Reeves: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제가 스스로 하나님께서는 놀라울 정도로 기뻐할 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꽤 오랫동안 기독교인으로서 살았지만 말이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름다우시고 우리를 만족케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고 나자 주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의무를 행하지만 기쁘게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정규: 복음주의 안에서도 말이죠?

Reeves: 복음주의권조차도 그래요! 제가 어린 그리스도인일 때 제 문제는 지옥에 가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저를 구원하셔서 천국에 보내주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결론적으로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은 천국이었죠. 제가 결국 원한 건 천국이 되어버린 거에요.%ec%8a%a4%ed%81%ac%eb%a6%b0%ec%83%b7-2016-11-16-%ec%98%a4%ed%9b%84-6-32-07

영광: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은 무의미해지고요.

Reeves: 맞아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하죠? 지겹쟎아요. 그냥 즐겁게 즐기면 되잖아요.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불러 자유케 하시고 “나와 동행하거라. 나와 함께 매일 교제하자. 나에게 매일 의지하거라. 날 세상에 드러내거라.”라고 하시며 당신 자신이 생명이자 자유임을 말씀해주시는 것이라면, 그제서야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보배이며 그분을 알아가고 교제하는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 요한복음 17:3이 말하듯이요 – 삶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심지어 삶을 기쁨으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날 구원하신 후에는 이제 기도모임 같은 수많은 지겨운 것들을 하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차라리 다른 걸 하고 말죠. 이것이 기쁨입니다. 여기서 기쁨이 발견되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경험을 나누고, 하나님 안에 있는 깊은 기쁨과 만족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셨으나 자기 자신을 기쁨(의 근원)으로 주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신학이란 바로 이 일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신학,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이것이 제가 신학에서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듣기 원하면 들려줄 수 있어요. 신학은 말 그대로 절 살렸습니다. 

영광: 정말 듣고 싶습니다.

Reeves: 그럼 말씀드리죠. 전 복음주의 기독교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어마어마한 믿음의 위기기 찾아왔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규: 그게 언제였죠?

Reeves: 스무 살 쯤이었어요. 모든 것을 의심했어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등 모든 것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심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은 듣기엔 참 좋았지만 이것이 진실일까, 내가 그의 구원을 얻기 위해 해야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걸 하고 싶어, 대체 그게 뭐야? 복음주의권에 있었지만 아무도 제게 해답을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책을 찾았습니다. 제가 그래서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죠. 제가 먼저 펼친 건 마틴 루터였습니다.

정규: 무슨 책이었죠?

Reeves: ‘그리스도인의 자유’였어요.

영광: 전공이 뭐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Reeves: 아 전 역사 전공자였어요.

영광: 역사신학 아니고 그냥 역사 말씀하시는 거죠?

Reeves: 네네. 신학이 아니라 그냥 역사였어요. 신학은 나중에 하게 됐죠. 어쨌든 당시 마틴 루터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만큼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만약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다면 내게 무슨 일이 닥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느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저만큼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어요. 이 문제 때문에 제 안에는 늘 깊은 불안이 있었거든요.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복음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제 의심을 찌르는 검을 마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심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핵심적인 예화는 왕과 가난한 여자아이입니다. 둘은 결혼하게 되는데요. 왕은 여자아이에게 모든 것을 줍니다. 왕의 모든 것이 그녀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모든 빚과 수치를 왕에게 드립니다. 왕은 그녀에게 자신의 왕국과 면류관과 부를 줍니다. 루터는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모든 수치와 빚과 죄책과 심판을 넘겨드리고 그는 우리에게 온갖 삶의 복과 의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죽음과 지옥을 마주한 죄인은 ‘만약 내가 죄를 지었으나 죄를 짓지 아니하신 예수님이 내 것이며 그의 모든 것이 내 것이고 내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다’고 말할 수 있다.”고 루터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은혜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복음이었죠. 하지만 이 복음은 사실일까요? 그래서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존 오웬을 읽게 됩니다. 존 오웬 전집 5권에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증명하는지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오웬이 이 사실을 말한 것을 읽자마자 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알아. 정말 그렇지.’라고 말이죠. 수많은 다른 논증들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웬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래, 정말 그렇지.’라고 말했죠. 다른 어떤 책도 나를 이렇게 정확하게 진단해내고 나를 완전히 풀어헤쳐 내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지는 못하며 제대로 된 마음이 무엇인지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하죠.

정규: 혹시 오웬의 어떤 책이었나요?

Reeves: 아. 제4권 ‘믿음의 이유the Reason of Faith’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근거와 이유와 방법들Causes, Ways, and means of Understanding the Mind of God’이었습니다.

이어서 오웬에서 리처드 십스로 넘어갔습니다. 리처드 십스의 ‘상한 갈대’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에드워즈도 물론 포함해서요, 단지 은혜로 저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분이시며 그분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젠 마치 문이 열린 낙원으로 들어간 것 같았어요. 모든 것이 그때부터 바뀌었습니다. 실재는 그리스도이든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데까지 제 의심은 갔었습니다. 만약 실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제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고 정말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리스도께서 실재라면 나는 죽는 즉시 지옥에 가게 되겠죠. 그래서 전 자살과 지옥 사이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던 겁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루터와 십스와 오웬을 읽으면서 전 기쁨을, 참되며 자유케 하는 근원적 만족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은 정말 말 그대로 제 생명을 살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이 진리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신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전 그 누구도 제가 겪었던 것을 동일하게 겪길 원하지 않거든요. 다른 이들도 하나님을 알게 되어 참되고 구원이 되며 만족이 되는 기쁨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영광: 그리고 우리가 언어가 다르고 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동일한 경험을 고백한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Reeves: 정말 그래요.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전혀 다른 문화를 살아가는 사람인데도 서로 만나자마자 우리 마음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복음의 경이입니다. 곧장 형제로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죠. 정말 멋지지 않아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Interview with Michael Reeves

5.’선하심’과 ‘삼위일체’의 연관성에 대해 더 파들어갑시다.

영광: 선하신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관계에 대해 책 제목을 통해 이미 말씀해주셨는데요. 더 구체적으로 ‘선하심’과 ‘삼위일체’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왜냐하면 매우 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요. 책의 제목은 ‘선하신 하나님’이신데, 책에서는 정작 삼위일체, 사랑, 생명과 같은 단어들이 더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저한테는 흥미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Reeves: 선하심, 사랑, 생명, 또는 자신을 내어줌과 같이 제가 책에서 많이 다루었던 내용들은 모두 선하심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고요. 만약 하나님께서 단수였다면 영원토록 그분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존재이고 다른 존재에게 선한 존재는 아닐 겁니다. 그는 의로울 수 있지만 선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적 의미의 선하심을 살펴보면, 선하심은 언제나 다른 존재들에게 선하게 행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요소가 있는 것이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성부께서 성령을 부어 성자를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은 영원토록 선하신 분이십니다. 성부는 성자에게 선하시고 성자는 성부에게 선하시죠. 이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며 사랑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영원히 이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수 하나님은 반드시 그가 선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로울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선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말씀이 다양하게 전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는 더 매력적이고 심지어 더 복잡한 모델들을 포함한 여러 모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 하나님인 알라든지, 부처든지, 신이 없는 유교라든지, 불가지론이라든지 말이죠. 하지만 그 어떤 신도 모든 실재의 근본인 선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실재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혼돈인가요? 신이 아니라 혼돈인가요?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의 실재는 매우 연약하고 쉽게 부서져 혼돈이 되어버리죠. 왜냐하면 가장 밑바닥은 혼돈이니까요. 아니면 권력인가요? 단지 자신의 뜻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명령하는 유일신인가요? 이런 경우에 사랑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결혼도 우정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게 있기나 할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 아래, 모든 실재의 밑바닥엔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이시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인간은 사랑하고자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귀길 원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길 원하고, 그리고 결혼과 우정이 지닌 모든 달콤함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실재 때문에요.

6.삼위일체를 어떻게 접근할까요?

영광: 교수님 책에서 제가 읽기로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을 접근할 때 먼저 삼위 하나님을 이해하고 나서 한 하나님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요. 만약 제가 제대로 읽었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알기로 로마 가톨릭적 이해에서는 한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 후에 삼위 하나님으로 나아갔는데요. 이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하고 교수님의 접근 방식을 따르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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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ves: 우리의 본질적 문제는, 단지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말하는 건데요, 누구나 자기 머리 속에 신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틀렸죠. 다양하겠지만요. 단지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자신은 그 말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에요. 하지만 온갖 종류의 오해와 잘못된 전제들이 작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심지어 아버지 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아버지가 선하지 않다면 그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잔인한 독재자처럼 느껴질 겁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싫어합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하나님은 의롭지만 하늘에 있는 독재자라고 생각하죠. 따라서 단지 한 하나님이라는 관념에서 시작하는 것은 사람들 머리속에 이미 있는 그 관념들을 무력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주신 질문을 조금 바꾸고 싶은데요. 사실 전 삼위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어떻게 신을 알 수 있는가?’ ‘예수님에서 시작하자.’ 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서 하나님과 연합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인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죠.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고 그리스도가 아버지께 사랑을 돌려드리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에서 시작하면 곧장 하나님은 관계적이시며 사랑이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바로 성경이 말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시죠.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이 이런저런 분이실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추려낼 수 있게 됩니다. 뭐든지요. 독재자, 잔인한 아버지? 아뇨. 독재자가 아닙니다. 다스리실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때부터 그분은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독재자가 아니시죠. 그리고 악한 아버지도 아닙니다. 그분은 아들을 사랑하는 분으로 정의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에서 시작하여 삼위일체로 향했을 때 비로소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을 골라낼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잘못된 관념들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수 없게 만드는 생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해야만 우리를 정말 만족하게 하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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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어떻게 생각해야하죠?

정규: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Reeves: 제 생각에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선하시고 사랑하시지만 마치 성격에 일종의 결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어두운 면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곤 합니다. 전자는 좋아하지만 후자는 말하고 싶어하지 않죠. 또는 정말 자신이 보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후자를 열심히 이야기하고 전자를 잘 이야기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때 정말 강력하게 말하곤 하죠. 하나님께서 마치 선한 면과 어두운 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선하시며 모든 면에서 사랑이십니다. 그렇다면 진노는 뭘까요?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악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처음으로 그 일이 일어나죠. 언제나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악을 발견하신다면 반드시 그분은 그 악을 미워하셔야 하며 파괴하고자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로서 이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 제 딸들을 사랑하고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가 여기 한국에 와 있는 동안 만약 그들에게 악한 일이 일어난다면 즉시 달려가서 그들을 구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을 제거하려하겠죠. 이 악이 제 딸들을 헤치려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보호해야해’라며 제 피가 솟구치겠죠. 즉, 제 사랑에서부터 악을 향한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보세요. 세상엔 끔찍한 악이 많습니다. 두 달 전에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어요. 그 정도로 끔찍한 악을 보고 있자면 결코 뒷짐지고 웃으며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전 그 때 우리나라가 이런 악을 대항하여 전쟁을 벌인 것은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악은 반드시 파괴되어야 해요. 사람들을 구해야죠. 따라서 사랑이 악을 마주했을 때 반드시 분노하여야 하며 그것을 판단하고 파괴하려 하여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있고 실재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시며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에 악을 향해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진리인데요. 성경에서 악을 파괴하고자 하시며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한 부분을 보며 ‘어쩜 이렇게 끔찍한 말을 하실 수 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를 보세요. 북한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보세요. 세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그 악들을 파괴하시며 화평이 있게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아름다운 것이에요. 따라서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랑하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으로 보지 못한다면 올바로 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

정규: 그럼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분노하신다. 그분의 사랑이 분노하시는 이유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Reeves: 그렇죠.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서 하나님의 분노가 나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며 그 사랑은 순전한 사랑입니다. 사람들도 사랑하지만 사람들의 사랑은 더럽고 왜곡되거나 악한 것을 사랑하곤 하죠,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의롭고 거룩하며 선하고 참되며 아름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악을 미워하셔야 하는 것이죠.

8.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쉽게 범하는 오류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영광: 책에서 삼위일체를 생각할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들에 대해 지적하셨는데요. 예를 들어서 양태론 같은 것들이요. 양태론을 ‘기분론moodalism’이라고 부르신 건 정말 재밌었어요. 정말 세속화된 21세기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삼위일체를 이해하려고 할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Reeves: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을 믿긴 해야 한다면 단순한 하나님이어야 할 겁니다. 그러니 삼위일체는 물론 아니죠. 너무 복잡해. 라고 생각할 겁니다. 한 하나님을 믿는 게 훨씬 간단한데 왜 굳이 어렵게 삼위일체를 믿겠어요. 따라서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인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긴 믿어야겠으니 세 위격을 한 하나님 안에 우겨넣어버립니다. 바로 양태론의 문제죠. 그들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세 가지 ‘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위격이 아닌 것이죠. 저는 이 문제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굉장히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과 복음의 본질에 있어 모든 좋은 것들은 다 벗겨버리게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서로 사랑하는 세 위격이 아니라 단 한 존재라면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게 됩니다. 그분은 선하지 않고 자비로운 성향도 없겠죠. 하나님의 본질에서 좋은 것을 파괴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복음도 파괴해버립니다. 우리가 삼위 하나님에서 보는 것은 성부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성령께서 우리와 그리스도를 연합시키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셔서 언제나 아들을 가지고 계셨던 그분께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구원을 요약하며 구속에 대한 성자의 목적은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것이며, 지옥의 상속자를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핵심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자녀가 될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입양될 수가 있으니까요. 만약 성부, 성자, 성령이 단지 세 양태라면 자녀가 될 수 있는 아버지가 없으며, 양자가 될 수 있는 아들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복음이 가진 가장 달콤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단지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의 의를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입양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을 대하며 내가 행한 의에 입각해서 나아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시며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여겨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이 주는 안식과 기쁨은 너무나 큽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본질 아닌가요? 우리가 기도하는 분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만약 단지 기분이 서로 다른 한 존재라면 이 모든 것을 파괴해버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리는 소망과 나아갈 담대함을 잃어버립니다. 간단한 오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이런 이해가) 그리스도인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Reeves: 원하신다면 그리스도인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더 말씀드릴 수도 있어요. 또 다른 오류는 아마 (양태론) 다음으로 보편적일 텐데요, 또 다른 극단입니다. 바로 아들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상입니다. 아리우스주의죠. 성자는 찬양받을 만하나 참 하나님은 아니란 거죠. 이 경우도 문제는 동일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할 아들이 없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하는 분이 아니신 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오직 은혜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도 아니시겠죠.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들에게서 발견하는 문제입니다. 여호와 파수대는 영원토록 사랑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여호와의 증인들 성도들도 여호와와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고 여호와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새 하늘과 새 땅’, ‘사자가 어린 양과 뛰놀며’와 같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팜플렛을 보면 여호와는 거기 없어요. 그게 핵심이에요. 여호와는 거기 없다니까요? 그는 그들과 함께하고자 하지 않아요. 모하메드도 그래요. 이슬람이 말하는 낙원에는 와인이 강처럼 흐르고 만약 남자라면 72명의 처녀를 갖게 된다고 하지만 알라는 찾아볼 수 없어요. 알라는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지 않거든요. 알라는 사랑이 아니며 관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과 관계하려고 하는 열망은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런 신은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는 신이 아니죠.

정규: 우리도 그런 신을 사랑할 필요 없겠고요.

Reeves: 바로 그거에요! 우리가 할 일은 그냥 신이 우리에게 하라고 하는 걸 하는 것일 뿐이죠. 우리는 노예인 거에요.

정규: 그냥 독재자일 뿐이네요.

Reeves: 그렇죠. 왜 신을 사랑하겠어요?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문을 두드리는 것은 그들은 두렵기 때문이에요! 천국에 가야하니까요. 여호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Interview with Michael Reeves

9.구체적으로 삼위일체를 우리 삶과 연결시켜봅니다. 일단 교회와 가정입니다.

영광: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성경적인 교회와 가정, 그러니까 결혼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텐데요. 이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Reeves: 물론이죠. 결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이어서 교회에 대해 얘기해보죠. 삼위일체만이 결혼에 합당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짧게나마 이야기했었죠. 제 목사 친구에게 찾아온 여호와의 증인들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이 이야기가 일신론에 대한 믿음은 결혼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거든요. 두 여호와의 증인 부부가 제 친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인 걸 알고는 그들은 제 친구에게 삼위일체를 믿냐고 물었어요. 제 친구가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삼위일체를 믿지 않나요?’라고 역으로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전서 11:3를 들어 얘기했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만약 머리가 있다면 그리스도는 신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친구가 말하기를 ‘맞아요.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죠. 그렇다면 당신의 논리에 따르면 만약 머리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라면 아내도 남편보다 못한 존재겠군요?’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보다 ‘덜’ 하나님이라면 아내도 남편보다 ‘덜’ 인간이겠죠. 그래서 제 친구가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보다 덜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내는 ‘아니요’라고 대답했고, 남편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영광, 정규: 와우, 정말요!!??

Reeves: 남편은 단지 일관성있게 생각했던 것 뿐이죠. 일신론을 믿는 신앙에서 여자의 존재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신론 신앙을 가진 종교에서 여성들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여성들은 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사랑 받거나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단지 남자들의 시종일 따름입니다. 반면 만약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결혼의 근본적 기초라면 결혼 안에서 어떤 사랑을 하겠어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복을 부어주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도록 하시는 것처럼, 저는 남편으로서 제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아내에게 부어주어 그가 절 사랑해주길 바랍니다. 전 제 아내를 정복하려 하거나 단지 제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니까요. 따라서 삼위일체는 제게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의 모델이 되어줍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규: 아 그 전에 혹시 성평등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성은 평등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교수님은 상보주의자(complimentarian)이신가요?

Reeves: 네 상보주의자입니다. 저는 양성은 그 지위에 있어 완전히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양성이 어떻게 함께 일하도록 계획되었는지가 다른 것이죠.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계속해서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십니다. 단 한 번만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내용이 나오죠. 요한복음 14:41입니다. 물론 아들도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더 주도적으로 사랑을 주는 역할은 아버지가 하시는 것이죠. 그렇게 고린도전서 11:3에서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에게 흘러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릴 사랑하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결혼 생활에서 아내와 전 다릅니다. 제가 먼저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녀가 어떻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상관없이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절 사랑해주길 원합니다. 제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먼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절 사랑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양성 간의 관계에 있어 성경은 남자가 사랑하는 자로서 우선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하고 보살피라고 가르칩니다. 아내는 그 사랑을 받아 로마서 1:5의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obedience of faith’라는 표현처럼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아내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이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쉽게 빠지는 유혹이 무언가를 해서 하나님이 사랑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여성들이 쉽게 빠지는 유혹은 무언가를 해서 남자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여성은 결코 무언가를 해서 남성의 사랑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녀는 사랑을 값없이 받아 마땅합니다..

교회의 경우를 이야기해보죠. 다양한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나게 됩니다. 고전 12장이 말하듯이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고요. 참 다양하죠. 이것은 서로가 클론이 아닌, 구분되는 세 위격이 완전한 사랑으로 연합하신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일신론의 경우는 이렇지가 않습니다. 단일신은 우리 모두가 클론이 되길 원합니다. 실제로 단일신론을 믿는 문화는 일반적으로 다소 단조롭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비슷하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한편 성경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선한 차이는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심지어 한 때 원수였던 자들까지도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이든 영국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한 가족이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장차 어떻게 될 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조화로 부르십니다. 즉, 삼위일체만이 유일한 세계평화의 소망인 것이죠. 이 하나님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참 사랑으로 부르실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됩니다.

Interview with Michael Reeves

10.선교와 전도는 삼위일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영광: 사실 제가 이 다음에 질문하려고 했던 것은 선교와 전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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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ves: 성부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하는 언어에서도 드러나죠.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비추는 빛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 베들레헴 외곽의 목동들을 비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죠. 새 예루살렘에는 빛이나 전등이나 해나 달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이죠. 성부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당신의 빛을 아들에게 비추시고 아버지의 형상이신 아들은 하나님에게서 보냄 받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표현하십니다. 따라서 십자가가 영광의 순간인 것은, 예수님께서 이를 당신의 영광의 때라고 말씀하셨죠, 그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났기 때문이며 당신의 생명을 주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선교와 복음전파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만약 하나님이 단수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힘겨운 일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뒤에서 천사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혼자 좋은 시간을 보내신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제가 애써 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뒤에서 여가 시간이나 보내고 계신 것이죠.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먼저 선교를 위해 길을 나서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본질이 자신의 빛을 나누어주시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선교와 복음전파는 하나님께서 뒤에서 지켜보시는 동안 우리가 나가서 힘겨운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미 하고 계신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 정규: 하나님이야말로 선교사이시네요. ) 하나님이야말로 선교사이시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필요로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 특권인 거에요. 그러니 선교에 있어 우리는 그분의 대사이고 그분의 동역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때 선교를 위해 나가고 싶어집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보냄 받은 것은 아버지를 너무나 기뻐하여서 그분에 대해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분이 얼마나 우리의 기쁨이 되시는지를 알수록 그분이 누구신지를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나누고 싶잖아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신지 보게 된다면 그분을 세상에 전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니 삼위일체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선교를 위해 나가는 연료가 되는 겁니다.

영광: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선교를 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치겠군요.

Reeves: 그렇죠.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하나님은 즐겁지도 않고 잔인한 독재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을 구원하기는 해야겠으니 그들에게 전해야겠고, 그래서 실제 나가서 전하겠지만 그 일이 우리의 기쁨이 되진 않을 겁니다. 해야하니까 하는 것이죠. 당신이 지옥에 가게 생겼는데 우리에겐 해결책인 천국이 있어. 하나님에 대해 굳이 말하려고 하는 건 아냐. 그리 좋은 분은 아니거든. (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설명할 것인가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거에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뿐 아니라 그들의 (영적) 성장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될 겁니다. 불신자 친구들에게 말할 때 ‘넌 놓치고 있어. 천국을 놓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기쁨이 되시는지를 모르고 현재를 놓치고 있단 말야! 넌 단지 돈이나 차나 직업이나 다른 것들을 쫓고 있잖아. 그것들은 결코 널 만족케 하지 못할 꺼야. 오직 하나님만이 널 만족케하셔!’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할지를 바꾸는 것이죠. 더 따뜻하고 더 설득력있고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복음을 더 아름답게 드러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 실제로 변화를 일으키는구나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광: 매력적이라고 표현하신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물질적 축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믿는다면, 자동차나 물질적이 것들을 주시기 때문에 그분이 선하시다고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러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나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너도 자동차나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이건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그것들 내가 노력해서 얻으면 되는데?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고 사면 되지.’라고요.

Reeves: 맞아요.

11.기도와 설교는 삼위일체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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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기도와 설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죠. 삼위일체 교리가 기도나 설교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Reeves: 삼위일체는 기도를 기쁨이 되게 하는 동시에 담대함을 줍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어떠해야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장담하건데 만약 삼위일체가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별로 기쁘지도 않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과연 그가 우리 기도를 들을까요? 당연히 아니죠. 심지어 우린 죄인인걸요. 우리 기도를 들을 리가 없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내가 당신의 아들이 되도록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나에게 성령을 주셔서 나를 통해 기도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복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만들어갑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성령께서 도우셔서 우리 안에서 휘저으시고 마음을 움직이셔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삶이 어려울 때는 더 그렇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너무나 괴로워서 신음소리 밖에 나오지 않을 때가 있죠. 그 때도 성령은 우리의 신음소리를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갈 수 있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기도가 (하나님을 향해) 항해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바람입니다.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우주의 왕에게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죠. 단지 위대한 왕에게 나아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신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도움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자격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결국 우리의 기도 생활이 가능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이 구원의 기쁨을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정규: 설교는 어떤가요.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1-17-%ec%98%a4%ed%9b%84-3-34-10Reeves: 삼위일체는 설교에 대한 높은 입장을 가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삼위일체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원한 설교자이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당신의 말씀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영광: 그의 아들이군요.) 그렇죠. 그의 아들이요. 성령의 능력으로요. 창세기 1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신 거죠. 그분은 영원한 설교자이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십니다. 그러니 설교자는 하나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셈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이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죠. 이 사실은 설교자에게 놀라운 격려가 됩니다. 나는 단지 어떤 소식을 팔러다니는 세일즈맨이 아니라 설교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동참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또한 설교자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정보를 다운로드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열 가지 것들을 알겠니? 라고 하시는 게 아니죠. 그분의 설교는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어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할 때 바로 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설교할 때 단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정보가 전달되지만요,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를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단지 정보 뭉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죠. 따라서 삼위일체는 설교할 때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며 설교자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설교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할 때 그리스도 중심이 되게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설교자로서 그리스도 중심적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발하시는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시니까요. 성령의 사역도 요한복음 15:26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말씀 또한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아버지의 목표와 성령이 원하시는 것과 말씀의 증언은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죠. 만약 내가 삼위일체적인 설교자가 되고 싶다면 전 반드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자여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그러하시듯이, 성령과 말씀이 그러하시듯이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누구인지, 설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높은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삼위일체는 설교가 단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나 도덕적 교훈을 하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아니지. 설교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12.실제 삼위일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정규: 그런 의미에서 삼위일체를 어린 아이들이나 일반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더 헷갈리게 할 뿐이라는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들에게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할까요?

Reeves: 아이들에게 삼위일체를 가르칠 때 아이들을 더 헷갈리게 한다는 생각은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양태론이나 아리우스주의 같은 것들이요. 물론 그 용어들은 좋습니다만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제가 우리 딸들에게 정말 어릴 때부터 삼위일체에 대해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받아들이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비결은 전 결코 비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요. 저는 절대 ‘하나님은 물, 얼음, 기체가 되는 H2O와 같단다.’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란과 같단다.’라고 말하지도 않아요. 저는 항상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런 비유들은 하나님을 비인격적으로 만들어요. 하나님이 계란과 같다고 생각하면 거기엔 세 위격은 없고 그냥 먹을 것일 뿐이죠. 그게 하나님이라면 이상할 뿐이에요.그래서 아이들이 삼위일체를 올바르게 이해했으면 해서 제가 간 곳은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 하나님을 한 장면에서 만나게 되잖아요. 아들이 물에 들어 가 있고 ‘내가 기뻐하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리면서 성령께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내려앉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이에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영을 아들에게 부으시는 것이죠. 거기 있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설명하면 아이들에게 왜 삼위일체가 좋은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요.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설명해줄 뿐 아니죠. 제가 끼어들어 설명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셔서 성령을 아들에게 부으셨단다. 내가 예수님을 믿을 떄 그 동일한 성령이 내게 부어진단다. 그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거야. 이제 나도 이는 내가 기뻐하고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된단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냐에 의해 자신이 그분의 양자가 되고 그분의 영을 받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더 알아가야 할 것이 참 많죠. 계속 다시 와서 저에게 물어봅니다. 하지만 제 딸이나 우리 교회의 어린 아이들은 헷갈려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왜 이런 거죠? 이건 무슨 의미죠?’라고 더 질문할 수는 있겠지만 헷가려하진 않아요. ‘하나님은 세 잎사귀와 같아’라는 식으로 말하면 설명해야 할 것도 많고 (오해할까봐) 제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더 헷갈려요. 그냥 말씀에 의거해서 그리스도에서 시작해 가르치면 됩니다. 예수님을 가르치면 삼위일체에 도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예수님에 추가로 붙은 첨가물 같은 게 아니거든요. 예수님은 당신의 아버지를 드러내시고 아버지가 보내신 영을 받으신 아들이십니다. 그러니까 삼위일체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이제는 ‘예수님에 대해 더 얘기해주마’라고 하세요. 다른 건 설명할 필요 없어요.

영광: 말씀은 명료하고 삼위일체를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말씀을 가지고 가기만 하면 그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거군요.

Reeves: 바로 그거에요. 훨씬 더 쉽죠?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라고 생각해요. 우스운 예화나 어려운 용어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죠. 애초에 쓰지 마세요. 그냥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님에서 시작하세요.

정규: 요리문답 같은 건 사용하지 않으시나요?

Reeves: 교회와 가정에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 내용들을 다룹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요. 여러 교리 교제들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서 ‘모든 아이들이 알아야 하는 진리’와 같은 책들이요.

13.다른 책들과 다음 저작 계획을 물어봅니다.

정규: ‘꺼지지 않는 불길’과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 이 두 책에 대해 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ec%8a%a4%ed%81%ac%eb%a6%b0%ec%83%b7-2016-11-16-%ec%98%a4%ed%9b%84-6-45-07Reeves: 물론이죠. ‘꺼지지 않는 불길’을 쓴 이유는 종교개혁의 신학, 곧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신학은 너무나 우리 삶을 자유케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했어요. 뿐만 아니라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그 사실을 발견했으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의도한 건 이 책을 읽을 때 독자가 자기 전에 읽는 이야기 책처럼 재미있게 읽었으면 했어요.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이길 원했죠. 읽는 건 단지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학에 젖어들고 확신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재미있게 읽은 후에 달콤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는 신학을 얻게 되었으면 했던 거죠. 그리고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잖아요. 제가 원하는 건 이 해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이 달콤하고 자유케 하는 신학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단지 500년 전 역사 속에 일어났던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자유케 하는 것임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을 쓴 이유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보배로, 그리스도를 모퉁이돌로, 그리스도를 기독교의 중심으로 보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천국이나 돈, 수영장과 같은 축복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랑했으면 했습니다. 기독교는 곧 그리스도니까요. 책을 쓰면서 이 점을 매우 명확히 하려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복음의 보배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려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너무 쉽게 놓치곤 하거든요. 난 은혜가 너무 좋아, 난 복음이 정말 좋아, 난 말씀을 사랑해라고 말하곤 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이며 은혜는 그리스도의 은혜이고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이죠.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심이 명확해지면 그 진리가 우리를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른 것들보다 더 귀하다고 고백하기 전에는 그것들의 노예 노릇하는 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뒤쫓는 직업보다 귀하며, 그리스도는 우리가 추구하는 연애보다 귀하고, 그리스도는 우리가 벌 수 있는 모든 돈보다 더 귀하십니다. 그분이 이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림자일 따름이고 그리스도가 실재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정규: 새 책이 나올 예정인데요. ‘Why the Reformation still matters’, 이 책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51dy5ndz9yl-_sx326_bo1204203200_

Reeves: 네. 이 책을 쓴 이유는 전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에 사람들이 종교개혁을 단지 오래 전 사건으로 기억하며 ‘어쩌면 기독교가 개신교와 천주교로 분열된 건 비극이고 부끄러운 일일지도 몰라. 그래서 종교개혁은 그냥 잊어버리고 다시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행복하게 사랑하자’고 말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이 책을 쓴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싸워 지키려 했던 은혜, 믿음, 십자가, 성경, 성령,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같은 진리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달콤한 진리들이며 오늘날도 지켜내야하고 붙들어야 하는 진리들입니다. 이 진리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왜 종교개혁이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진리들이 여전히 의미있기 때문이죠.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입니다. 모든 사람을 자유케 하는 진리입니다.

정규: 혹시 다음 저작 계획이 있으신가요?

Reeves: 네. 찰스 스펄전에 관한 책을 거의 끝마쳤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스펄전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글 쓰며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그의 신학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그의 삶에 대해 짧게 다루지만 그의 신학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삶 정도로 다룹니다. 대부분은 중생, 십자가, 설교, 기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고통 – 스펄전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 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영광: 꼭 읽어보고 싶네요.

14.마무리합시다! 한국교회와 독자들을 위한 한 말씀부탁드립니다.

정규: 교수님과 만나 얘기할 수 있어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감명깊었습니다. 특히 복음에 대한 교수님의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고 인터뷰를 끝낼까 합니다.

Reeves: 하나님께서는 한국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고, 놀라울 정도로 한국의 교회에 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머물지 마세요. 안주하지 마시고 교만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안주하고 교만하게 된다면 기독교는 단지 교회에 가고 기도모임에 참석하는 것에 불과한 공허한 것이 되어버릴 겁니다. 한국의 교회는 쪼그라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그 어떤 것보다 그분이 가장 귀하시며 우리의 만족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다른 어떤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봄으로서 진솔하게 기도하게 되고, 단지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예배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함으로 땅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선교가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출발한 불타오르는 가슴에서 시작된 것이길 바랍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그분만을 자랑하시고 그분께 집중하시고 그분 안에서 여러분의 기쁨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교회를 튼튼하게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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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석사 과정 재학 중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Comments 2

  1.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따뜻한(혹은 뜨거운) 목회자의 마음을 느끼면서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기쁨’을 중심으로 풀어가시는 것이, 존 파이퍼 목사님의 목소리와도 겹치는 듯 하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마이클 리브스 목사님의 열정적인 신학 이면에, 죽음을 마주하면서 씨름하신 괴로운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허무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 그 능력은 삼위일체 안에서 영원히 존재해왔고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묵상해 봅니다.
    허무를 넘어서서,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는 목사님의 사역이 참 귀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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