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 The Gospel Coalition ’19 소개 및 첫 펀드레이징
부탁의 말씀: 펀드레이징을 진행한 이유, 꼭 한 번 읽어주세요. ^^
펀드레이징 중간 보고
혹시 잊으셨나요? 펀드레이징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
미국에 있는 이점을 활용해서 마침 제가 거주하고 있는 시카고에서 가까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리는 The Gospel Coalition 2019 National Conference에 참여하려고요. 물론 단지 참여하기 위해 ‘돈 없어요. 도와주세요’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참여해서 현재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복음주의 운동의 실체 자체를 옅보고 특파원으로서 한국에 계신 분들께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생생하게요.
그래서 “함께 하기 위해” 펀드레이징을 진행했고 목표는 $1,000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펀드레이징 중간 보고 드립니다. 중간 보고라기엔 조금 늦었지만 마지막 보고는 다녀와서 최종으로 다시 한 번 더 드리고자 해서 중간 보고라는 이름을 붙혀봅니다.
3.27 현재 한국과 미국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과 전혀 모르는 분들까지 총 12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 제 가족 친척을 제외해도 10분이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모금된 최종 금액은 (한국 원은 편의상 1,000원 =1달러로 계산했습니다) $1,470입니다. 영상에서도 밝혔지만 제 작은아버지가 조카 불쌍하다고 크게 도와주셔서요 ㅋㅋ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작은아버지께서 도와주신 $500 빼고도 거의 목표 $1,000에 도달했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종 감사는 컨퍼런스 다녀와서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와주신 금액은 컨퍼런스 관련 경비를 충당하고 진짜배기에 더 양질의 컨텐츠를 올리는데 뜻있게 사용될 것입니다.
그럼 넌 대체 왜 이 듣도보도 못한 펀드레이징이란 걸 시작한 게냐?
생소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펀드레이징이라니? 더 구체적인 제 고민의 결과들은 (그래봤자 공상들입니다) 다음 기회에 또 밝히려고 합니다. 영상과 함께요. 오늘은 딱 엑기스만 하나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펀드레이징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은 이런저런 이유 다 차치하고 딱 한 가지 본질적 목적에서였습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함께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조금씩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는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실제 손에 얻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를 본 사람이 실제 손에 얻어내기 위해 죽어라고 맨땅에 헤딩해서 이루어내는 것이 이제까지의 소위 한 개척 목사의 ’목회 신화’였고 한 기업 총수의 ‘기업 신화’였습니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더 넓게 보면 그 가치를 얻어내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은 이미 교회에, 사회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망치를 들고 있고 누군가는 렌치를 들고 있고 누군가는 삽을 들고 있죠. 다만 각자 할 일을 하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없어서 힘들다 없어서 힘들다라고들 하지만 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없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있는 것들이 집중이 안 되어서, 그리고 잘못된 곳에 집중되어서 힘든 겁니다. 진짜 가치있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곳에 집중하니 결국 에너지도 재화도 자원도 인력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죠. 만약 없어서 힘든 것이라면 지금 한국 교회가 돈에 무너진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겠죠. 전, 이제까지 교회가, 특히 한국 교회가 이 점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혁주의 진영이 이 부분에 매우 소홀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종합해서 하나의 일을 일루어낼 것인가?를 디자인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능력도 재화도 인력도, 많습니다. 다만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호소력 있는 가치와 그 가치를 추진해나가 육화(incarnate)시킬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할 뿐입니다. 진짜배기 운영과 같은 작은 일이든 The Gospel Coalition 같은 컨퍼런스를 열만큼 큰 일이든 말이죠.
선교를 예로 들면, 선교는 한 사람이나 한 가정이 놀라운 헌신으로 인생을 바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기도 지원과 실제 물질적 지원과 선교사 가정을 돌보고자 하는 조직적 도움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헌신에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다 맡기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지요. 우리 모두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 나온 지 몇십년이 되었으나 얼마나 현실적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제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제 눈엔 잘 보이지 않더군요.
전 현실적으로 이 일을 이루어내기 위한 방식으로 펀드레이징이 문화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고… 다소 나이브하게 생각합니다. 전 초대교회의 헌금도 그런 의미로 모아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궁핍한 자들과 어려운 자들을 돕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했고, 거기엔 당연히 연보가 포함되었던 것이죠. 이웃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나라 세우기도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헌신된 한 사람이나 한 가정에 소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갈고리를 걸고 운 좋게 그가 영웅이기를, 그래서 그가 분연히 일어나 하나님 나라가 조금이나마 이 땅에서 수면 위로 들어올려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제자를 12명 뽑으신 것으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목회자들이 잘못되어 간다고 한탄하시고 심지어 욕하시나요?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큰답니다. 한 명의 목회자에 교회의 명운을 맡길 것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으로 귀한 목회자를 잉태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영웅에 기대왔었던 것 아닐까요? ‘함께 하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 아닐까요?
너무 거창하죠? 너무 거창해서 다 써놓고 봐도 전 그냥 진짜배기 운영이나 잘 하면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만 듭니다. 하지만, 전 그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일을 이런 철학에 입각해 운영하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진짜배기라는 타이틀로 펀드레이징 하는 것도 제게는 너무 컸습니다. 가장 작은 단위, 가장 작은 일부터, 가장 구체적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 단기 프로젝트를 꾸렸고 2. 1인 프로젝트로 꾸렸으며 3. 작은 액수의 펀드레이징으로 시작했습니다.
말이 길었네요.
그래서 왜 펀드레이징 했냐고요?
당신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함께 하고 싶었냐고요?
바른 가치를 함께 추구했을 때 함께 누리는 기쁨이 천국의 기쁨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프로젝트가 뭔 천국의 기쁨까지나.. 싶겠습니다만,
그곳을 향한 작은 걸음이기를 바랍니다.
이 걸음에 동참하여 주셨기에, 마음으로 물질로 후원해주신 당신은 제게 결코 작은 도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