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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건 덩컨 – 예수님을 알았던 이방 여인(막7:24-30)

이상한 말씀

이상하고 심지어 받아들이기 힘들고 기분이 상할 정도.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임을 드러낸다. 예수님이 이방인을 무시하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그 반대다.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자.
예수님의 임무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 여인의 반응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예수님의 임무

예수님은 지금 두로 지방에 계신다. 이방인 지역이다. 거기서 공적 사역을 하러 가신 것이 아니었다.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어를 사용하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이 결국 예수님을 찾아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한다. 여인은 절박하나 예수님은 경멸하시는 것 같다. 매우 강하게 말씀하신다. 이방인을 멸시하는 호칭이었던 개라고 그를 칭하시고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으로 표현하시며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한다. 대체 무슨 의미인가? 마태복음 평행본문(15장)은 좀 나은가? 심지어 더 심하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심지어 그에게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 여인이 간청할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빌어 여인을 보내라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부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신가?

사실 귀를 기울여보면 성령은 이 본문을 통해 이방인에게도 은혜가 동일함을 보여주신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이상한 것이다. 기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예수님이 온 세상의 구세주로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예수님은 이방인에게 관심이 없으셨나? – 두 가지 증거

질문을 해보자. 이 본문은 예수님이 이방인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가? 아니다. 두 가지 증거가 본문에 있다. 첫째, 예수님이 두로로 가신 것은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주는 빵은 그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현이다. 둘째, 본문은 예수님의 이방인을 향한 의도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오늘 본문 앞 5:1-20에서 예수님은 이미 이방인을 구원하셨으며 본문 바로 앞인 7:18-19에서는 모든 음식을 정하다고 선언하신다. 의식법과 유대인/이방인 구분에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당시 제자들과 첫 독자들과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의 사명과 우리 사명에 관해 중대한 사실을 가르치시고자 주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본문이 수천명을 먹이시는 두 사건 사이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을 주의하라. 막6장에서 5천명을 먹이시고 막8장에서 4000명을 먹이신다. 하나는 유대인 영토에서 다른 하나는 이방인 영토에서 행하신 사건이었다. 6:52는 굉장히 중요하다. 기적을 일으키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은 놀라운 일을 보았으나 전혀 이하해지 못했다. 동일한 일이 8:17에도 등장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함을 책망하신다. 즉 오늘 본문은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빵과 연관된 두 사건 사이에 위치한 것이다. 빵은 여기서 메시야 사역이 당신의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과 공급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본문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엘리야 선지자가 방문하여 숨어있던 사르밧 과부에게 유사한 사역을 했던 것을 기억하게 한다. 사르밧은 시돈 남쪽 8.5마일 정도에 위치하며 두로에서 14마일 북쪽에 위치한다. 예수님이 가신 곳이 두로나 시돈이 아니라 두로 지역이라고 한 것을 기억하라. 눅4:24-26에서 예수님 자신이 이미 이 사건을 인용하신다. 나사렛 회당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할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오직 사르밧에게만 보냄 받았음을 인용하셨다. 명백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약속을 거부하고 자녀가 아닌 이들이 그 약속을 받을 것에 대해 경고하신 것이다. 눅10:13-14에서 예수님은 만약 이적을 시돈에서 행했다면 그들이 돌아왔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로는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에 바알을 소개시켜 온 곳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이 이방 지역에 있는 이방 여인에게 다가가신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에 관해 중요한 것을 말씀해주신다.

여인의 반응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정체와 사역

둘째, 여인이 예수님에게 보인 반응이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드러낸다. 예수님에게 보인 여인의 반응은 우리에게 기도란 무엇이며 신학자들이 ‘믿음의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예수님의 자비와 이방인을 향한 임무를 보여준다.

여기서 예수님은 헬라어를 쓰는 시리아 페니키아 가나안 출신 이방인 여인과 대화하고 계신다. 바울이 유대인 중 유대인이었다면 이 여인은 이방인 중 이방인이다. 메시야가 그 앞에 서 계신다. 여인은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다. 마가복음 전체에서 주님을 부름말로 사용한 유일한 곳이다. 마태는 그녀가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세 번이나 불렀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메시야적 용어를 사용하여 부르고 있다. 그녀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바리새인들보다, 제자들보다, 모인 무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뒤에야 베드로가 주님에 대해 같은 고백을 한다. 이미 이방 여인의 고백을 들은 후였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보인 반응과 비교해보자. 그는 당신의 주님이 살아있듯이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여인은 주님을 메시야라 부른다. 자신의 결핍과 문제를 해결하실 분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왜 여인에게 이렇게 반응하셨는가?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반응을 보야야 한다. 첫째, 그녀는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당신은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지금 함께 있는 이들은 당신이 누군지 모를 수 있으나 전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둘째, 제네바 성경도 이렇게 주해한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의 말을 당신의 입으로 말씀하시며 그들을 보고 계신 것이다. 셋째, 마가는 예수님이 먼저 힌트를 주셨다고 기록한다. ‘자녀들을 먼저 먹이는 것이 옳다’ 가 빈틈이다. 이 여인은 ‘그러니까 기회가 있다는 거네요. 완전히 닫히진 않았네요. 먼저 그들 주세요. 괜찮아요. 하지만 전 부스러기라도 좋아요.’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학자들이 ‘구원의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다. 구원 받은 죄인은 자신의 죄를 인지한다. 그리고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긍휼을 본다. 여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마땅히 받아야 함을 깨닫고 자신을 낮춘다. 자비를 구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에게 부르짖는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고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았다. 그분의 자비가 자신의 죄보다 더 큼을 알았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방인을 고칠 때만 말씀으로 고치신다. 가지도 않으시고 말씀만으로 고치신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언제나 방문해서 고치셨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해 한 번도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는 말씀을 하신다. “네 믿음이 크도다!(마15:28)”

선교는 신약과 구약 모두에 뿌리를 둔다

예수님은 지금 시편 87편의 말씀을 성취하고 계시는 것이다.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이는 선교는 신약 만의 것이 아니라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고아와 과부를 향해 가는, 가난한 자들을 향해 가는, 끝 없이 고통을 무릅쓰고 가는 이 사역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열방에 알리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도 모든 방언과 열방과 남녀노소에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선교는 결코 신약의 사역이 아니라 성경의 사역이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과 유일한 온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밝힌다. 요한복음 4:42에서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들은 이들은 자신의 말로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요일4:14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보다 먼저 이방 여인의 입의 고백을 통해 이 사실을 가르치고 계신다. 할렐루야! 오 놀라운 하나님, 오 놀라운 구세주, 오 놀라운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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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Comments 4

  1. 구원의 부스러기 같은 소리네,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람이 내 자녀들이 먼저다? 유대인 최고~시대적 한계 못 빠져나온 것 보소ㅋㅋ 다이아몬드보면 보석인 것 아는 듯이 진리라는 것도 좀 그래야되지 않겠나? 이렇게 구구절절 감싸는게 아니라 걍 민족주의자라고 보는게 빠를 듯, 기독교도 참 애 많이 쓴다. 인간을 신이라고 방어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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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쵸. 그래서 이 본문이 상당히 난해하게 여겨지는 것 같네요. 자비로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보기엔 너무 빡쎼고 잔인하죠 사실. 그런데 그건 이것만 보았을 때의 해석인 것 같네요. 예수님의 전 사역 과정과 그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같은 사상을 이어 받았던 제자들과 초대 교회의 방향을 보면 새로운 해석의 프레임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네요. 예수님께서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이해하기 힘들지만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고자 그렇게 설명하신 경우가 아주 많거든요. 어찌보면 비유를 사용하셨던 것도 그런 맥락이고요.

  2.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의 말을 당신의 입으로 말씀하시며 그들을 보고 계신 것이다.
    = 걍 유대인인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말했다. 유대인 선민주의자 우리국민 먼저~ 외국인 멍멍이들은 나중에 내가 특별히 자비를 배풀어서 구해줄께, 아 그냥은 안되고 자기 주제 파악 제대로 하고 납작 엎드려서 빌면 말이지. 이방여인 똑똑하네 지가 개인거 주제 파악했구나?

    내 도움이 필요하지? 간절하지? 외쳐봐 주님! 다윗의 자손! 메시아! 완전ㅎㄱㅇ아저씨 아님?ㅋㅋㅋ
    로마 밑에서 그렇게 나대다가 십자가형 당한 거지 뭐

    응 그래봤자 유대인들 예수 절대 안 믿죠? 어떡하냐 그렇게 예뻐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안 믿어서? 예수야 말로 개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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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여러가지 해설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왜 예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는 설명이 안 될 거에요. 이렇게 해석하시려면 전제가 “예수는 자신을 믿기를 원했다.” ➡ “이방인들에게도 나눠줄 수는 있지만 나한테 빌면 그게 가능하게 해줄게” 일텐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게 되는지는 성경 전체의 구원에 관한 설명에 배치가 됩니다. “유대인들 예수 절대 안 믿죠?”라고 하셨는데, 예수를 믿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구원은 또 무슨 의미이고 어디서부터의 구원이며 어디를 향하는 구원일까요? 예수는 왜 유대인들에게는 그 구원을 허락하면서 이방인에게는 짜게 하신 걸까요? 짜긴 짜더라도 허락은 하셨다는 얘긴데, 그럼 그 허락은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하나님과의 배타적 관계가 전 세계 인류로 확장된 사건은 초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현대 유대인에게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고 머리 쥐어 뜯으면서 토론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흔적을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선생님 말씀대로 해석해볼수도 있겠지만 성경 전체 안에서 의미를 가지기 힘들 것 같네요.

      그리고 어떤 의견을 개재하시는 것 좋지만 “예수야 말로 *죽음~” 이라는 말씀은 굳이 그리스도인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적/도의적 눈으로 보더라도 타인의 믿음에 대한 아주 잔인하고 부적절한 언사라 생각됩니다. 다른 데서는 이렇게 말씀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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