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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언약을 기억하기 좋은 때

노아 언약을 기억하기 좋은 때

성경에 여러 언약이 나오죠. 다윗과 맺으신 언약,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 맺으신 새 언약 등등… 잘 생각하지 못하고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있는데 노아와 맺으신 언약입니다. 마침 오늘 아침 묵상하며 보게 되었네요. 이런 생각이 스쳐갑니다. ‘아, 지금이 노아 언약을 꼭 기억해야 하는 때, 기억하기 참 좋은 때구나…’라고 말입니다.

독특한 노아 언약

창세기 9장에는 홍수가 끝나고 생명의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세기 9:8-17

언약은 관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창조를 통해 이미 피조물들은 조물주인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었죠. 하지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고 모두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와 사랑으로 ‘의인’으로 택함 받은 노아와 그 가정은 방주를 통해 홍수에서 살아남았죠. 극적입니다. 이제 새로운 아담으로서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될 터입니다.
그런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말씀하시죠. ‘우리 관계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라고 말입니다.

관계니까 관계를 맺는 당사자들이 있겠네요. 일단 하나님이 ‘갑’이십니다. ‘을’의 자리에는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중심이 노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범위가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포함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노아의 피에 속한 모든 자 (결국 모든 인류), 그리고 노아와 함께 방주에 타 하나님의 구원의 혜택을 누린 짐승들 (결국 모든 움직이는 짐승들) 은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의 첫 창조에 버금가는 수준의 언약이라 하겠습니다. 마이클 호튼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언약은 새 창조와 같다. 즉, 하나님께서 인류의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피조 세계의 자연적 운행은 여전히 붙들고 있겠다고 맹세하신 것이다.” (Introducing Covenant Theology, 113)

또 하나 특별한 점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세우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세우셨던 모세 언약 등과는 달리 인간 쪽에 할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언약은 쌍방 의무가 있기 마련인데 여긴 없어 보이네요.

언약의 내용도 독특합니다.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게 언약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나는 지점이네요. ‘멸망하지 않을 것’, 다시 말해 ‘당연히 멸망 당해야 하는데 멸망의 손을 거두겠다’라는 것이 노아 이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일반 은혜’라고 부르죠. 네, 질서 가운데 진과 선과 미를 누리며 숨쉴 수 있는 오늘의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실 가장 놀라운 점은 언약의 증거에서 등장합니다. 두 번이나 강조하시죠. 무지개입니다. 하늘에 무지개를 두어 이 새로이 시작되는 관계의 증거를 삼으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증거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언약의 증거인 무지개가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 세상을 향한 언약을 기억하는 용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물론 하나님께는 이런 증거가 없어도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사람이 아니시니 하신 말씀을 후회하지 않으시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지개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사람보고 무엇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언약 자체를 기억하는 용도도 있겠지만 이 말씀에 따르면 ‘이 무지개를 보며 우리를 멸망하지 않으시겠다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 참 용도인 것 같습니다. 무지개를 보고 ‘아 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자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를 유지하고 지키시며 자비로 붙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를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왜 지금 기억하기 좋다는 거요?

그래서 왜 지금이 노아의 언약을 기억하기 좋은 때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하는 힘든 문제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충격을 주는 문제들을 보며 하나님의 다스리심, 곧 섭리를 기억해야 할 때이기 때문인 것 같네요. 노아 언약을 통해 다시금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1. 망해가는 것 같아도 결코 멸망시키지 않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소망을 가질 수 있고 2. 이 언약을 누구보다 기억하고자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3. 이 언약을 끝까지 지키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언약이나 구속사에 대한 이해를 반드시 가져야 하는 이유는 신학적 개념이 다 담을 수 없는 구체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시간 안에 실제 인간 및 피조 세계 전체와 맺으시는 관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언약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진짜 많이 힘겨운 이 시기.
노아와 맺으신 언약이 단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온 피조 세계에 해당되는 언약임을 기억하며 그 붙드시는 자비의 손을 기억하며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힘겨운 때에 우리 모두에게 고개를 들어 무지개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박사 과정 중 부르심을 받고 현재 시카고 베들레헴 교회 담임 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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