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신학이란? 제 6강 – 언약

 

Summary 요약 

대부분의 기독인은 ‘언약’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개념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특히 개혁주의신학이 언약적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전 구속사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키워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언약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Covenant of Redemption  구속언약
2. Covenant of Works 행위언약
3. Covenant of Grace 은혜언약 

언약이란 둘 혹은 그 이상의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약속 혹은 개인을 의미한다.

 

성경적 언약에서 첫 언약에 사람의 노력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첫 번째 언약은 신학적 개념으로서,
삼위하나님께서 각 위격끼리 구속의 전 과정에 있어 완전한 동의agreement를 하신다는 의미이다.
삼위의 구분 자체가 구속에서의 기능에 의한 구분이다. 물론 구속의 전 과정에서 삼위 하나님 모두의 참여가 있으나 교회 역사 속에서 삼위 하나님의 각 위격이 완전히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를 설득해야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을 방어하기 위해 이 언약은 강조되어졌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담와 하와와 맺으신 약속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였다.
이에 대한 시험이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금하신 것이었다. 그들의 결과는 자신의 행동에 의해 결정되었다. 결국 피조물 쪽에서 불순종하여 언약을 어긴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아담과 맺은 언약은 대표성을 띤 것으로서 전 인류와 맺은 언약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 언약을 무시하고 신경쓰지 않으려 할 수는 있으나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곧,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 언약 아래 있다)

세 번째 언약은
아담이 두 번째 언약을 준수하는데 실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심을 보여준다.
모세와 아브라함 등을 통해 두 번째 언약을 다른 방법으로 성취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계속해서 약속을 주신다.
어떤 신학자는 구약과 신약의 구원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는 바울의 로마서 3~5장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 언약이 깨어졌을 때 유일한 구원의 방법은 ‘은혜’ 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완벽함으로 두 번째 언약을 다시 해결하고자 하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공로work’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설명은 세 번째 언약과 두 번째 언약이 구분되어져야 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데서 해답을 찾을 수가 있다. 우리의 ‘공로’는 아담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worker을 보내셔서 두 번째 언약을 해결하신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우리는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 ‘오직 칭의’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약과 구약의 구원 방식이 다른 것이 아니다. 세 번째 언약은 창세기 3장 이후 계속해서 구원의 방법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부어진 것이다!

 

 

Thoughts  생각하기

  개혁주의를 알게 된 이후 계속해서, 그리고 쉽게 들을 수 있었던 단어가 바로 ’언약’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영어에서 covenant의 위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어에서 ’언약’이라는 말은 기독교적으로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계약이라던지 약속이라던지 하는 단어들을 병행해서 사용합니다.[1]
 
  그런데 사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 시간에 목사님들께서는 언약을 약속과 완전히 동의어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약속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붙들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신다는 방향으로 설교하시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현대 강단을 비평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언약이 가진 고유한 신학적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짚어보는데서 그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강의 요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언약은 명확한 신학적 개념입니다.  영어로 된 신학서적들을 보다보면 조금 애매한 부분이 나옵니다. 바로 Covenantal Promise와 같은 표현들입니다. 만약 언약을 단지 약속의 조금 더 고급스러운(?) 표현 정도로 생각한다면, 이 표현은 동어반복이 되어버립니다. ‘약속적 약속’, 또는 ‘언약적 언약’ 이렇게 되는 것이죠. 영어에서 언약(Covenant)이 약속(Promise)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은, 언약과 약속을 명확하게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 하나 같은 맥락에서 쉽게 경험하는 하나님의 약속(또는 언약)은 모두 나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무언가 주시겠다, 해주시겠다, 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약속이나 언약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약이든 약속이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면 모두를 지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겠다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당신의 나라를 회복하시겠다는 가슴뛰는 약속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 또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 포함된 약속입니다.
 
  이렇게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특성을 표현한 고유한 신학적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책을 읽을 때나 강의를 들을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서 언약은 1.구속언약 2.행위언약 3.은혜언약으로 나눌 수 있는, 하나님께서 삼위 내적으로 또는 인간들과 관계하시는 방법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적인 관계를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구속언약은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나머지 두 언약과 구분될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 전과 후에 인간과 관계하시는 방법에 차이가 생긴다는 측면에서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은 구분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알아도 우리는 신약과 구약의 구분, 율법와 은혜의 구분, 타락 전과 후에 대한 이해가 전체 언약적 구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타당성은 차차 배우고 터득하더라도, 언약에 대한 개념이 개혁신학 내에서 중차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이 글들은 예전에 요약해둔 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들어도 잘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면서 정리하니까 더 큰 도움이 되네요. 얼른 다음 강의도 올리겠습니다.
 
 


  1. 그래서 어떤 책은 언약으로 어떤 책은 계약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영어 원어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팔머 로벗슨의 <계약신학과 그리스도>의 원제목은 입니다. 마이클 호튼의 책 <언약신학>은 원제가 이죠. 동일하게 Covenant라는 단어인데 전자는 계약이라고 후자는 언약이라고 번역한 경우입니다.  ↩
Over de auteur

영광

선교사 부모님 덕에 어린 시절 잦은 이사와 해외생활을 하고,귀국하여 겪은 정서적 충격과 신앙적 회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를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렇게 코가 끼어 총신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재학 중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세상 귀여운 딸래미의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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