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학생의 주저리론 – 1화 ‘시간을 구속하라’

시간을 구속하는 것에 대한 일화는 아는 영국의 지인(누구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어서)의 실화입니다. 말씀에 대한 일상적인 적용이었는데 시간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저에게는 인상적이고 도전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말씀이냐면, 엡 5:16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개역개정) Redeeming the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KJV) 이 말씀이죠. 비슷하게 쓰인 말씀이 골로새서에도 있습니다. 골 4:5 –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개역개정) Walk in wisdom toward them that are without, redeeming the time. (KJV) 여기서 Redeeming에 쓰인 원어는 ἐξαγοράζω로, 실제로 ‘옮기다, 구속/속량하다, 값을 지불하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용례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몇몇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죠. 갈 …

과학과 인간관(2): 인공지능, 뇌과학, 그리고 환원주의

지난 포스팅에서는 기독교와 과학이 필연적으로 부딪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그 과학적 주장 뒤에 숨어있는 자연주의적 전제가 기독교 사상과 부딪치는 것이라는 것을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자연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는대요. 자연주의는 여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과학에 있어서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와 철학적인 자연주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란 과학적 물음에 대한 답변과 탐구를 하나님의 개입 같은 개념을 배제하고 자연적인 것만으로 설명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며, 철학적인 자연주의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자연 세계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신과 천사와 그 비슷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주장”입니다.1 그러므로 지금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일단 철학적인 자연주의를 전제하고 진행되는 과학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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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음악: 건설적인 방향을 위한 고찰

찬양에 있어서 음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언제든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이슈가 되어서 찬반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을 비추어봤을 때 지금 EDM이 문제냐’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말 그대로 지금은 더 시급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타락의 모습들을 생각했을 때, 지금 EDM 문제를 놓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상당히 소모적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리고 찬양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마냥 가볍게 다룰 문제는 또한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찬성측이든 반대측이든 서로의 입장을 납득하지 않은 상태로 자신들의 생각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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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간관(1): 기독교와 과학은 왜 충돌하는가?

진화론을 주제로 하는 EBS 다큐프라임이 제작한 『신과 다윈의 시대』를 보셨나요? 책으로도 출판되었는데, 거기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과학은 자연계를 이해하는 믿을 만한 수단이고, 종교는 영적인 수단”이므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말이죠.1 그런데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 『신과 다윈의 시대』는 사실 종교와 과학이 부딪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일단 그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학자들을 보더라도, 그들 중에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왜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말하는 종교와 과학이 부딪치는 것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두 세계, 즉 종교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를 구분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결국 하나의 실재로 다가옵니다. 이는 두 영역이 개념상 구분될 수는 있으나 절대로 완전히 독립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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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나무, 그리고 영생을 누리는 삶

생명 나무는 선악과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성경에서 신비하고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나무 중에 하나입니다. 이 생명 나무라는 단어는 창세기 2–3장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 구약에서는 오직 잠언에서만 등장하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가서야 다시금 나타납니다.   동산의 두 나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여러 종류의 열매 맺는 나무들을 만드셔서 아담과 하와가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 두 나무를 두셨는데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요, 다른 하나는 생명 나무(עץ החיים)였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원래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지하셨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해서 설명했었습니다만, 이 나무의 열매는 어떤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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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라해도 대부분 들어봤을 내용입니다. 그리고 단골 손님 격으로 질문받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대체 왜 선악과를 만드신거야?”라고 말이죠. 하나님께서 선악과만 안 만드셨어도, 사람들이 타락할 일은 없었지 않았겠느냐라는 질문인거죠.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전형적인 답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대답은 아니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논의를 넓히다보면 아담의 역사성 문제와 연관해서 이 나무가 실재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까지 나아가게 되겠지만, 거기까지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사건으로서 이 주제를 다뤄보겠습니다(그리고 당연히 실재했다고 믿구요).   다양한 해석들 선악과라고 많이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

신간 둘러보기: 5월

짜잔-! 5월달에도 우리를 심쿵심쿵하게 하는 책들이 마구마구 나오고 있습니다. 가난한 전도사로서는 차마 다 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많군요. 그래도 다 갖고는 싶…   코르넬리스 프롱크,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터는 없네』 (임정민 역, 그책의사람들) 『도르트 신조 강해』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가 있는 코르넬리스 프롱크 목사님의 저서입니다. “목회 역사 현대 신학 주제에 대한 27편의 소고”라는 부제가 잘 소개해주듯이 이 시대에 우리가 고민하면서도 굳건히 붙들어야 할 신앙의 핵심들을 잘 지적하고 있는 책입니다. 진짜배기 블로그에서는 과거에 이 책의 일부 내용을 소개해놓기도 했습니다(궁금하시면 클릭). 쉽고 명쾌하게 쓰여진 글입니다. 이안 머리의 추천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읽어보시고, 그리고 책을 사서 보시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메신저』의 편집자가 줄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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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연합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의 사람으로 중세 최고의 신학자를 꼽으라면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에 관한 간단한 약력이나 주요저서의 해제를 보고 싶다면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올려놓은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추천할만 한 것 같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신학자의 견해를 우리가 굳이 알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의문을 품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종교개혁을 따르는 개신교의 신학은 “가장 성경적인 신학”이어야 함과 동시에 “보편적인 신학”이어야 합니다.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두 보편교회의 전통, 곧, 우주적 교회로서 주요 교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R.C. 스프롤이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강의한 것을 소개한 다음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편교회의 신학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이 …